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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바보들의 행진' …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중앙일보 2013.11.13 00:22 종합 22면 지면보기
저마다의 방법으로 일탈을 감행한 ‘잉투기’의 세 주인공. 앞줄 왼쪽부터 태식(엄태구)·영자(류혜영)·희준(권율). 결국 이들은 모든 소란의 시작점인 인천 간석오거리에서 만난다. 이곳은 실제로 인터넷 유저들이 만나 싸움을 벌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진 프레인글로벌]


14일 개봉하는 영화 ‘잉투기’(엄태화 감독). 제목부터 독특하다. 내용도 그렇다. 요즘 청춘들의 이야기를 독특하게 그려낸다.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청춘, 취업난에 좌절해 골방에 처박힌 청춘, 그런 상투적 묘사는 없다. 대신 이 시대 청춘의 해방구격인 인터넷 문화를 발랄하게 펼쳐놓는다. 그들의 고민이 생동감 넘친다.

엄태화 감독 첫 장편영화 '잉투기'



인터넷 방송·메신저 … 현실·화면 뒤섞여



엄태구(左), 엄태화(右)
 태식(엄태구)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칡콩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어느 날 라이벌 ‘젖존슨’에게 느닷없이 현피(온라인상에서 다투던 이들이 실제로 만나 싸우는 것)를 당하고, 태식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동영상과 신상 정보가 인터넷에 일파만파로 퍼진다.



 굴욕감을 느낀 태식은 친한 동네 형이자 유일한 친구 희준(권율)과 함께 종합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격투 대회에서 젖존슨과 겨루기 위해서다. 체육관장의 조카 영자(류혜영)가 합류해 ‘잉여 삼총사’ 구색이 완성된다.



 인터넷 문화의 특성을 녹여낸 ‘잉투기’는 그 스타일 자체도 기발하다. 스마트폰 메신저와 인터넷 방송, 온라인에서 구현되는 화면과 오프라인 현실이 뒤섞이며 기이한 에너지를 만든다. ‘잉여세대’를 자처하는 요즘 젊은이의 우습고도 쓸쓸한 단면을 탁월하게 건져 올린다.



 잉여(剩餘)는 본래 ‘다 쓰고 난 나머지’를 뜻하지만, 요즘은 젊은 세대가 하릴없고 무기력한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뚜렷한 목표 없이 살아가는 태식은 물론이고, 온갖 욕구 불만을 인터넷 먹방(먹는 방송)을 운영하며 푸는 영자, 부모 덕에 생활 걱정은 없지만 하는 일 또한 없는 희준은 모두 저마다의 외로움에 허덕이는 우리 사회 청춘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잉투기’는 엄태화(32) 감독의 첫 번째 장편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품이다. 감독은 잉투기 대회와 여러 ‘현피’ 사례를 참조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잉투기는 ‘~하고 있다’는 뜻의 영어접미사 ‘ing(잉)’과 맞붙어 싸운다는 뜻의 ‘투기’가 결합한 신조어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이 참여해 2011년 두 차례 열린 실제 격투기 대회 이름이기도 하다.



 엄 감독은 대회 참가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그 진지함을, 그리고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는 심리”를 발견해 캐릭터에 녹여냈다. 극 중 세 인물의 고군분투가 마냥 웃기고 한심하게 보이지만은 않는 배경이다.



  첨단 디지털 문화를 다루되 영화의 전반적 정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지향한다. 영화음악으로 김세화의 ‘나비소녀’,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 같은 옛 히트곡이 등장한다. 감독은 “과거의 청춘들을 관통했던 고민과 지금 우리의 고민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여주인공 이름 영자 역시 올 9월 타계한 최인호 원작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 감독)에서 따왔다.



‘관심 갈구하는 심리’ 현실적 묘사



 이 영화에 거창한 교훈은 없다. 하나같이 누추한 주인공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 대신 소심한 일탈만이 겨우 허락된다. 섣부른 희망보다 그 현실적인 묘사가 오히려 동시대 청춘들에게 위로가 될만하다.



 주인공 태식을 연기한 엄태구(30)는 최근 ‘동창생’ 등의 영화에도 출연한 배우이자, 엄태화 감독의 친동생이다. 두 사람은 앞서 여러 단편에서 감독과 배우로 호흡을 맞췄다. 그 중 ‘숲’은 2012년 미장센단편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지금은 충무로의 기둥으로 성장한 류승완 감독, 배우 류승범 형제도 연상된다.



이은선 기자



★★★☆(정현목 기자): 기발한 화면구성과 리듬감에 신인감독의 재기가 번득인다. 한참 웃다가도 결코 우습지 않은 청춘의 슬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강성률 광운대 교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가상과 현실의 연결고리. 그 안에서 방황하는 ‘똘끼’ 충만한 청춘들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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