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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내년부터 컴퓨터 전학년 필수 … 한국 "수능에 안 나오니 … " 8%만 선택

중앙일보 2013.11.12 00:39 종합 8면 지면보기
런던의 공립 앤슨초등학교 5학년(한국의 4학년) 학생들이 태블릿PC를 이용해 중세 영국의 주요 성(城)과 가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지난달 24일 런던 북서부 브렌트구에 있는 공립 앤슨초등학교. 5학년(한국의 4학년) 교실에 들어서자 분주히 태블릿PC를 다루고 있는 학생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PC 화면에는 옛 영국 가문의 문장(紋章)들이 가득했다. 한 학생이 문장을 종이 위에 옮겨 그렸다. 또 다른 학생은 태블릿PC로 문장의 의미를 검색했다. 컴퓨터 수업이 아니라 중세의 주요 성(城)과 가문에 대해 배우는 역사수업 시간이었다.



 같은 5학년 옆반 교실. 이 반에서는 학생들이 노트북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컴퓨터 수업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퀴즈 형식의 계산 문제를 풀었다. 수학시간이었다.



영국, 세계의 디지털 리더 목표



 영국의 초등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 정보통신기술(ICT)이 필수 과목이다. 하지만 앤슨초등학교 학생들은 컴퓨터 수업을 따로 받지 않는다. 대신 모든 수업시간에 컴퓨터를 활용한다. 음악시간에 태블릿PC로 여러 악기 소리를 듣고 과학시간에 데스크톱PC로 가상실험(시뮬레이팅)을 하는 식이다. 사실상 모든 수업이 한편으로는 컴퓨터 수업시간인 셈이다.



 7년 전 이 같은 수업을 처음 도입한 교사 사이먼 파일은 “별도 ICT 수업을 하다 보니 학생들이 이미 다 아는 내용이 많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일반 수업시간에 ICT 교과 내용을 녹여 가르치는 방식을 도입해 봤다”고 말했다. 그의 새 수업은 성공적이었고, 이듬해 학교 내 모든 학급 수업에 적용됐다.



 이런 수업방식은 ‘컴퓨터 활용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교육이라고 불린다. 단순히 컴퓨터 사용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활용해 사고의 영역을 확대하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른다는 개념이다. 영국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1만6000여 개의 초등학교 가운데 현재 900곳 정도가 이런 방식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음악·역사 등 모든 수업 PC 활용





 앤슨초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컴퓨터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가령 역사시간에 학생들이 각자 좋아하는 왕을 고르게 한 뒤 스스로 그 왕이 돼 통치기간에 한 일을 동영상으로 발표하도록 하는 식이다. 학교는 동영상 제작실을 따로 만들어 학생 스스로 동영상을 찍고 컴퓨터로 편집할 수 있도록 했다. 담당교사 파일은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 세상에서는 글 쓰는 능력 못지않게 영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내년부터 컴퓨터 교육을 한층 더 강화한다. 기존의 ICT 과목이 컴퓨팅(Computing) 과목으로 바뀌고 초·중등 전 학년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컴퓨터 교육과정에는 컴퓨터 작동원리(알고리즘) 이해와 응용 프로그램 활용은 물론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소프트웨어(SW)를 프로그래밍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영국 정부는 일반 교과에도 ‘컴퓨터 활용 사고’ 개념을 적용해 수업시간에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런 정책 변화를 “영국이 미래 국제사회의 디지털 리더로 자리 잡기 위한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세계적 IT 강국’이라는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중·고교 선택과목으로 분류돼 있는 컴퓨터(정보) 교과 선택률이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2006년 약 78%에 달했던 중학교 컴퓨터 교과 개설률은 지난해 약 23%로 떨어졌다. 컴퓨터 교과를 실제 수강하는 학생은 15만여 명으로 전체의 8.2%에 불과하다.



 컴퓨터 교육이 외면받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입시 공화국’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영국처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는커녕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선택과목에조차 포함이 안 돼 있다 보니 누구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부실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도 높다. 과거 정부는 정보화교육을 한다며 하드웨어 확대 위주의 정책을 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 컴퓨터 사 주고 인터넷만 깔아 줬지 전문교사 양성이나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때나 고교 때나 워드·엑셀만 가르치고 학생들은 게임에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워드·엑셀 가르치고 끝



 정부도 최근 SW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8월 창의인재 육성방안에 이어 지난달 SW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어릴 때부터 누구나 SW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온라인·TV를 이용한 교육 프로그램 방영, 방학 중 SW캠프 실시 등 ‘교실 밖 교육’이 대부분이다. 정규 초·중등 교육과정 관련 내용 중 구체화된 것은 2015년 개교를 목표로 심사 중인 SW마이스터고 설립 정도뿐이다.



 한국교원대 이영준(컴퓨터교육) 정보교육원장은 올해 노벨 화학상이 분자구조를 분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CHARM) 개발자들에게 돌아간 것을 예로 들며 정부의 이 같은 접근방식에 우려를 표시했다. “정보 분석 자체가 과학인 세상이다. 꽃꽂이 교육도 아니고 ‘사이언스’를 가르치는 데 체계적인 교육과정 없이 ‘교실 밖 수업’만으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 특별취재팀=이상언 특파원(영국 런던), 김한별(미국 시카고)·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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