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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 나는 일하는 엄마다

중앙일보 2013.11.12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박지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미술시장의 이해’ 수업 한 시간 전. 강의 자료 속 내용을 첨삭하고 인터넷으로 최근 미술시장 뉴스를 읽는다.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휴대전화가 울린다. 바둑학원 버스 기사 아저씨다. 큰애가 버스 타는 곳에 없단다. 웬일인가 싶어 아이 수배에 나선다. 집에도, 친구 집에도 없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린다. 그때 다시 휴대전화가 울린다. 기사 아저씨다. 큰 애가 방금 왔단다.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근처 떡볶이 집에서 공짜 어묵 국물을 한 컵 마시느라 늦었다고 한다. 문제 완벽 해결.



 다시 강의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수업 시작 20분을 남기고 출석부, 피티(PT) 파일, 세미나 자료 등을 챙긴다. 그때 또 휴대전화가 울린다. “엄마, 언제 와?” 이제 막 말을 시작한 둘째 아이다. “응, 엄마 누나들 가르치고 이따 갈게. 저녁 먹고 나면 짠하고 나타날 거야”라고 달랜다. “나, 맘마 벌써 먹었는데? 엄마, 빨리 와!” 아이가 울먹인다. 나는 “지금 달려가고 있다”고 얼버무린 뒤 부랴부랴 전화를 끊는다. 고민 대충 해결.



 퇴근길 지하철 객차 안. 조영남씨의 『현대인도 못 알아 먹는 현대미술』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휴대전화에 ‘카톡’ 메시지가 뜬다. 큰아이의 반 학부모들이다. 학예회 개그 프로그램의 대본 선정, 연습 일정, 배역 분장 등을 논의한다.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쏟아지는 와중에 남편에게서도 카톡이 온다. 꼭 처리할 일이 생겨서 좀 늦게 오겠단다. 오늘 저녁 육아업무 추가요!



 그렇다. 나는 이렇게 산다. 하루 종일 학교에 있거나 아니면 갤러리·경매회사에 들러 일을 보지만 내 뇌의 일부는 아이들을 위해 촉수를 켜둔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업무 중 돌발상황이 생기고 그때마다 해결사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때론 나는 남편이 부럽다. 남편은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 씻기고, 같이 책을 읽어주는 자상한 남자다. 그런데 그건 남편이 회사를 떠나 집에 왔을 때 얘기다. 남편은 바둑학원 버스기사 전화번호도 없고, 아이들 예방접종 스케줄도 모르고, 학부모들과 네트워킹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다르다. 아이 육아와 관련해 세부적인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산다.



 이렇게 ‘멀티’로 일하는 것 자체는 견딜 만하다. 때론 보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온다. 나같이 일하는 엄마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다. 직장에선 일 하는 엄마는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맞는 말이다. 일에만 올인하는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직장맘들에겐 일뿐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울 역사적 사명이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일하는 엄마는 경쟁력이 떨어질까? 나는 낮에 육아로 잠깐씩 빈 업무 공백을 저녁 때 채운다. 오후 8시면 나는 둘째 아이를 재우러 들어가고 남편은 큰애와 30분간 숙제를 봐준 뒤 아이를 재운다. 오후 9시, 파김치가 된 남편과 나는 각자 노트북을 들고 와 거실 탁자에 놓고 못다 한 일을 시작한다. 그러니 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남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다.



 일하는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직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복병은 전업주부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처음 맛보는 독특한 세상이었다. 전업주부들에게 일하는 엄마의 직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의사, 회계사, 변리사 등 사회에서 소위 잘나가는 직업이라고 해도 그냥 ‘일하는 엄마’일 뿐이다. 일하는 엄마의 아이들은 거칠거나 버릇이 없다고 여긴다. 엄마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으니 일부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들도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짬짬이 시간을 내 반 모임에 참석하고, 아이가 하루 동안 잘 지냈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애정을 쏟아준다. 일과 육아 다 완벽할 순 없지만 완벽해지려고 부단히 애쓴다.



 그러니 직장 동료와 상사여, 그리고 전업주부들이여, 일 하는 엄마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주길 바란다. 이들 대부분이 일도 열심히 하고 육아도 열심히 하는 수퍼우먼들이다. 존경심이나 배려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일과 육아를 위해 애쓰는 우리를 조금이나마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만 발동해도 거기서 만족하련다.



박지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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