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홈런 세리머니' 같은 갈등 정치

중앙일보 2013.11.11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야구가 몸싸움이 없는 경기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두 팀 선수들이 격렬하게 충돌할 때가 있다. 투수의 공을 받아쳐 펜스를 넘긴 타자의 홈런 세리머니 때문이다. 타자는 외야로 멀리 날아가는 공을 보며 두 손을 번쩍 들거나 배트를 치켜든다. 짜릿한 승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장면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세리머니가 상대 팀 투수를 자극해서다. 다음 번엔 타자에게 빈볼이 날아올 공산이 크다. 올해 미국 프로야구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서 LA 다저스의 쿠바산 괴물 야시엘 푸이그는 장타를 날린 뒤 타석에서 거만하게 볼을 바라보기만 했다. 다저스의 4번 타자 아드리안 곤살레스는 홈런을 친 뒤 미키마우스를 흉내 내는 세리머니를 했다. 상대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들은 도발로 받아들였다. 두 팀 선수의 난투극은 없었지만 경기가 끝난 뒤 카디널스의 강타자 카를로스 벨트란이 일침을 놓았다. “홈런을 맞은 투수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은 스포츠맨십이 아니다. 투수는 다음 번에 그 타자를 반드시 잡겠다고 더 집중하며 맞붙는다. 결국 손해는 과잉 세리머니를 한 타자가 보게 된다.”



 야구의 이 격언, 세상살이에도 적용된다. 특히 요즘의 정국에 빗댈 만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이 됐다. 남북관계에서 성과가 있고 외교적으로도 화려한 날들이 이어진다. 박 대통령의 원칙 있는 리더십도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로 눈을 돌리면 위태로워 보인다. 야당과의 대화 단절, 불통, 구태 정치. 이런 지적은 다 이유가 있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우쭐대는 홈런 세리머니가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여권은 지금 상승기류다. 고공행진 중인 박 대통령 지지율과 최근의 재·보선 압승이 더 미소 짓게 한다. 하지만 이걸 ‘우리가 잘해서’라고 해석하는 건 오산이다. 무력한 야권에 실망한 민심이 갈 곳 없이 떠돌다 잠시 머문 게 아닐까. 국민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같은 정보 기관이 전면에 나서는 정치를 이상하게 본다. 권력 핵심부 인사는 특정 지역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검사 출신 여당 국회의원은 외국에서 현 정부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고 “시위한 사람들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며 채증 사진 등을 법무부를 시켜 헌재에 제출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통령의 외국 순방 때 이런 치졸한 시위를 하는 무리도 한심하지만 국민 위에 군림하겠다는 투의 여당 국회의원의 사고방식도 놀랍기만 하다.



 정치란 무엇인가. 국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아닐까. 지금 정국은 “내가 홈런을 쳤으니 너희는 손뼉 쳐!” 하며 과잉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벨트란은 홈런을 친 후 소감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투수가 실투를 했다. 원래 좋은 공을 가진 투수다. 이번에 실수로 치기 좋은 공을 던졌을 뿐이다.” 상대를 자극하지 않고 배려하는 이런 정신,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