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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통신비 10만원의 비극 '아내의 가계부'

온라인 중앙일보 2013.11.08 15:07
'돈은 최상의 종이고, 최악의 주인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몇 년 전 로또 명당을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가게가 생기고 1등만 무려 15번이 넘게 나왔다는 그곳엔 긴 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로또를 사러온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지요. 교복을 입은 여학생, 강아지를 끌고 산책 나온 아줌마, 먼 거리를 달려온 직장인. “1등에 당첨되면 뭐할 겁니까”라고 묻자 많은 답이 쏟아집니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여행도 가고. 표정들이 환해집니다. 그런데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해질까요?”라고 묻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더군요.



월급통장에 찍힌 숫자가 행복과 정비례할까요. “마음이 부자여야 진짜 부자”라는데, 어떠십니까. 당신의 마음은 가난한가요, 부자인가요,



아내가 가계부를 씁니다. 남편의 한 달 월급은 180만 원. 아이를 키우면서 빠듯한 살림에 아껴보겠다고 시작한 가계부 때문에 부부 사이가 틀어집니다. 결국, 파경에 이른 부부는 이혼소송 끝에 재산분할까지 합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각색합니다.



#아내의 이야기 “병원 입원해 통신비 많이 나왔다고 부부싸움”



이건 초등학생 일기 검사만도 못하다. 퇴근하고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남편은 “가계부 가져와 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한 달에 몇백만 원씩 가져다주는 거면 모르겠다. 고작 남편이 내게 주는 돈은 90만 원. 이 돈으로 분유, 기저귀, 찬거리 사면 남는 게 없는데. 그래도 남편은 내가 “사치한다”고 몰아세운다.



남편이 한 달 버는 돈은 180만 원. ‘사치스러운’ 나를 못 미더워 해 시어머니에게 월급에서 80만 원을 떼 맡긴다. 시어머니가 “불려주신다”고 약조를 하셨단다. 남편은 거기서 부부 휴대폰 통신비 10만 원을 떼고 남은 금액인 90만 원을 생활비로 준다.



생활비는 늘 마이너스였다. 현금서비스를 받아 감기 걸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도 했다. 1년 전. 남편과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났다. 남편과 나 모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2주 만에 퇴원을 했지만 나는 한 달을 병원에 묶여있었다. 한 달 뒤, 퇴근한 남편은 화가 나 있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썼느냐”는 거였다. 서러웠다. 수백만 원도 아니고, 교통사고로 다쳐서 병원에 있는 동안 친정엄마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좀 한 걸로 사람을 이렇게 닦달하다니.



고작 휴대폰 비용으로 싸움이 시작됐고, 남편은 의자를 집어던졌다. 난 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새벽 술에 취해 친정을 찾아온 남편은 대문이 부서져라 두드렸다. 엄마가 문을 열어주자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며 패악질을 했다. “왜 행패를 부리냐?”라고 성난 엄마가 내 편을 들자, 남편은 엄마의 멱살을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다음날 아기 옷과 짐을 가지러 집에 가보니 집이 휑했다. 남편이 TV는 물론이고 숟가락, 쌀, 냄비, 칼, 이불까지 죄다 챙겨간 후였다.



#남편의 이야기 “그놈의 돈, 돈, 돈!”



결혼하고 집을 마련할 형편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몇 년 뒤 작은 방을 구해 독립을 했다. 독립하교부터는 돈이 좀처럼 모이질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서부터는 더했다. 아내는 퇴근한 날 볼 때마다 “생활비가 없다”고만 했다. 내가 돈을 찍어내는 기계도 아니고. 그저 월급쟁이 아닌가. 공장에서 하루종일 일하며 번 돈을, 아내는 너무 쉽게 쓰는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가계부를 쓰라고 한 건 아니었다. 퇴근하고 맥주 한잔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우리 지출을 좀 줄여보자”라고 했다. 아껴서 아이 학교도 보내고, 집도 사고, 여행도 다니자면서 말이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가계부는 오히려 싸움만 됐다. 아내는 가계부를 보여주기 싫어했다. “이건 뭐냐”고 물었을 뿐인데, 아내는 화를 냈다. 한 번은 가계부를 보자고 했더니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고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매달 어머니에게 맡기는 80만 원. 아내는 그걸 마뜩찮아 했다. 어머니는 당신 돈을 보태면 모를까 그 돈을 쓰실 분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내는 듣질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께 드리는 돈을 줄이고 생활비를 더 달라”고 고집을 피웠다.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첫 손주니 내가 내야지”하면서 어머니는 병원비를 내셨다. 하지만 처가에선 오히려 “아기를 보러오고 싶은데 병원이 너무 멀다”며 타박을 했다. 이 일로 아내와 내가 다투자, 장모는 “대학 나왔으면 처신 똑바로 하라”며 앞뒤 없는 폭언까지 했다. 우리 부부는 돈 때문에 멀어졌고, 이젠 돈 때문에 소송을 하게 됐다.



#법원, “배우자와 가정에 대한 고민 결여”



부산가정법원은 이 부부의 이혼소송에 이런 판단을 내렸다. “부부가 상대방의 성격, 가치관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법원은 “서로 자신의 방식만을 상대방에게 고집했고 가정의 유지,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라며 "이혼하라."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파국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잘못’은 남편에게 있다고 했다. 법원은 “새벽에 처가에 찾아가 장모에게 상해를 가해 혼인생활이 극단적인 파국에 이르도록 한 잘못이 있다.”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정한 위자료는 700만 원. 남편은 이 외에도 아내에게 결혼 생활동안 모았던 전재산의 25%를 아내에게 주게 됐다. 부부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가계부를 쓰며 모았던 전 재산은 3300여만 원(자동차 등 포함) 남짓이었고, 아내는 이 중 800만 원을 소송으로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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