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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과학 유행을 바라보는 두 관점 사이에서

중앙일보 2013.11.08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정재승
KAIST 교수
바이오 및 뇌공학과
과학 분야에선 꾸준히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때론 유행한다. 복잡계 물리학 분야만 해도 1990년대 카오스와 프랙탈이 크게 유행했고, 그 후 복잡계 특징 중 하나인 작은 세상 네트워크가 인기를 끌었다. 나노과학이 주목받고 그곳에 연구비가 몰리면, 고체물리학자들은 나노현상에 주목하고 관련 연구가 쏟아진다. 최근 유행이라면 커넥톰이나 빅 데이터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인간과 쥐의 뇌 안 1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들이 시냅스를 통해 서로 연결된 모든 연결망’인 커넥톰을 밝히는 프로젝트에 장기적으로 수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되고, 컴퓨터기술과 네트워크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들의 숨겨진 욕망을 읽을 수 있는 대용량 데이터가 분석 가능해지자 빅 데이터는 과학계를 넘어 사회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유행하게 됐다.



 이를 바라보는 학계 내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런 개념들을 ‘실속 없는 일시적 유행’일 거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마 많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속할 텐데, 새로 등장한 개념들이 실제로 특별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일시적 유행에 그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저 유행을 좇았던 과학자들에게 거액의 연구비만 안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나서. 평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도 의심하도록 훈련받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오랜 검증을 버텨낸 기존 과학에 몸담은 학자들의 학문적 의심이 결국 옳은 것으로 판명 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계에 새로이 등장한 개념은 기존 과학을 한순간 낡은 것으로 치부해 기존 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새로운 현상에 열광하는 학자들은 새 현상이나 방법이 기존 과학으론 얻을 수 없는 획기적인 결과를 제공할 거라 선전하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방법론을 사용하는 과학자들에겐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기존 과학에 익숙한 학자들은 새로운 개념을 인지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내 연구에 활용하기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그러다 보니 유행을 좇는 과학자들이 가져가는 연구비, 혹은 그들이 쉽게 영향력 있는 저널에 논문을 싣는 특권이 부적절하다고 여긴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걷는 학자들은 존경을 받는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새로운 개념을 자신의 연구영역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탐구해 보는 것이 학문적으로 기여할 거라 여기는 관점이다. 새로운 개념의 등장을 흥미롭게 여기고, 결국 실패하더라도 그것의 학문적 의미와 가능성을 탐색해 보려는 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저 퍼즐을 맞추는 연구가 아니라 판을 새로 짜는 연구에 목마른 과학자들이라면 가치전복적인 새로운 개념에 학문적 호기심을 느끼고 위험한 탐색에 도전해 보는 일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무엇보다도 두 번째 관점은 ‘탐구의 즐거움’이 매우 크다. 새로운 개념이나 현상·방법론은 어떻게 다룰지,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 그 이론적 틀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럽지만 그것이 주는 지적 쾌감 또한 만만치 않다.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설렘도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두 관점 사이에서 생각의 줄다리기를 하며 연구할 것이다. 어떤 개념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개념은 의심하고 회의하면서. 그 스펙트럼 선상에서 자신의 위치는 개인적 성향이나 연구 경험과 관련이 깊다. 학문적 권위를 의심하는 데 익숙한 연구자들일수록, 새로운 방법론 도입이 용이한 분야일수록 후자에 흥미를 더 느낄지 모른다.



 심리학자들은 신경세포의 연결구조로 마음을 설명하려는 커넥톰 연구를 환원주의라 비판한다. 사회학자들은 빅 데이터 분석은 피상적인 현상만 수치화해줄 뿐 인간 사회의 본질을 밝히긴 어려울 거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연구비가 지원되는 것에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정답은 연구를 해보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과학자의 적절한 태도는 쉽게 단정짓지 않고, 새로운 시도가 내놓을 연구결과들을 신중하게 기다리는 일일 게다. 지적으로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인지적으로 열린 태도를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학자의 태도니까.



 더 훌륭한 과학자라면 아예 두 관점 사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개념을 학계에 제안하는 시도에 도전하는 것이다. 설령 그 개념이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무참히 깨지고 한때의 해프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지라도 말이다. 세상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 보려는 시도는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지만, 그 덕분에 과학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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