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공동기금 통한 강제징용 해법 모색을

중앙일보 2013.11.08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경제계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상공회의소·경제동우회 등 경제 3단체와 일·한경제협회가 6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 법원의 배상 명령 판결에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들에 대한 배상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음에도 최근 한국 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한국 투자와 사업 전개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 차원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하면서 일본 기업에 대한 법원의 배상 명령이 잇따르고 있다. 7월 서울과 부산 고법이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과 미쓰비시(三菱)에 대해 배상을 명령한 데 이어 이달 초 광주지법도 미쓰비시에 대해 같은 판결을 내렸다. 타국 법원의 판결에 일 재계가 이례적으로 공동대응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대법원의 재상고심 확정판결을 앞두고 일 재계가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경제적 압박을 통해 한국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는 데다 그동안 양국 재계가 유지해 온 정경(政經)분리 원칙에도 어긋난다.



 정부 간 협정을 뒤집은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일본은 한국 사법부의 법적 안정성을 문제삼고 있지만 불법적 주권침탈의 당사자가 할 얘기는 아니다. 수많은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막대한 이득을 본 일본 기업들이 정부 간 협정 뒤에 숨어 완전면책을 주장하는 것 또한 파렴치한 형식논리다. 피해자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청구권을 포기한 한국 정부도 문제다. 그 대가로 받은 청구권 자금이 한국 경제를 일으킨 종잣돈이 된 건 맞지만 그래도 피해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한 노릇이다.



 지금까지 정부에 접수된 강제징용 피해 사례만 20만 건이 넘는다. 대법원의 배상 명령이 최종 확정되면 줄소송은 불 보듯 뻔하다. 해당 기업의 한국 내 재산을 압류하는 등 강제집행에 나설 경우 일 정부와 기업이 반발하면서 외교문제로 비화할 게 분명해 보인다. 경제적으로 불가분의 파트너 관계에 있는 한·일 두 나라가 이 문제로 정면대결하는 것은 둘 다 손해다. 합리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나치 치하에서 강제동원의 혜택을 누린 기업들이 정부 차원의 배상과는 별도로 거액의 기금을 조성해 외국인 피해자들을 보상하고 있는 독일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청구권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한 한·일 정부와 강제동원으로 이득을 본 일본 기업, 또 청구권 자금의 혜택을 본 한국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만하다. 일일이 사법부의 판단에 맡길 게 아니라 한·일 정부와 재계가 함께 나서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는다면 갈등 해소의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