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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될까요

중앙일보 2013.11.08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다’는 말, 건축에도 적용된다. 첫인상은 초라하거나 엉성한 건물도 그걸 만든 사람, 그곳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결합되면 특별해진다는 걸 건축 분야를 취재하며 여러 번 확인했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정재은 감독)은 최근 수 년 사이 가장 ‘문제작’이었던 건축, 서울시 신청사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는 다큐멘터리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중 한 명이 페이스북에 적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흉측해 보이던 서울시청이 사랑스러워지려 한다”고.



 ‘쓰나미 건물’ ‘최악의 건축’이라는 각종 오명을 뒤집어쓴 이 건물. 감독은 ‘누구 잘못으로 이렇게 됐는가’를 고발하는 대신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이를 거쳐간 사람들의 모습을 침착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신청사를 디자인한 건축가 유걸씨와 아이아크 직원들, 실시설계를 담당한 삼우설계와 시공사 삼성물산, 그리고 발주처인 서울시 담당 공무원이 모두 주인공이다. 서울의 중심, 고궁 근처라는 이유로 설계는 여러 차례 변경됐고,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도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그사이, 시청 앞 광장에선 월드컵 응원전과 광우병 촛불집회, 싸이 콘서트가 열렸다. 감독은 영화를 위해 4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7년간 3000억원을 들여 세워진 이 건물의 복잡한 조감도가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홀’ [사진 미디어데이]
 자극적이지 않지만 울림은 크다. 영화 속에는 한국의 공공건축이 처한 슬픈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행정편의주의에서 시작된 턴키방식(시공사가 설계와 시공을 모두 책임지는 일괄수주계약)은 실력 있는 건축가들을 공공건축에서 소외시켰고 이는 자랑할 만한 공공건축 하나 없는 씁쓸한 현실로 이어졌다는 사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던 건 다른 이유다. 이 건물과 관계된 사람들이 어쩐지 다들 피곤하고, 쫓기고, 화가 난 듯 보여서다.



 공사의 마무리 과정을 집중적으로 찍은 탓이겠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주로 “기간 내에 끝낼 수 있어?” “시간이 없어” 등이었다. 빡빡한 공기(공사기간)를 맞추느라 설계팀는 울고, 시공사 직원은 윽박지르며, 담당 공무원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행한 표정의 사람들이 쫓기듯 지은 건물에 과연 어떤 종류의 행복이 담길 수 있을까. 숭례문 복구과정에서도 느꼈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는 매번 이리 서두르는지. 조금만 천천히, 웃으면서 가는 길은 정말 없는 건지.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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