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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미친 전셋값에 갇힌 대한민국

중앙일보 2013.11.08 00:32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그래. 어찌 보면 진부하고 식상하다. 미친 전셋값. 사상 최장, 63주 연속 올랐단다. 별 대책도 없다. 백약이 무효란다. 골머리만 아프다. 이럴 땐 언급 않는 게 상책이다. 눈 질끈 감고 모른 척하자. 어디 하루 이틀 얘긴가. 그렇게 자리를 끝낼 때쯤, 부동산전문가 A가 버럭 흥분했다. “전셋값, 놔두면 나라 망한다.” A는 요즘 ‘전셋값 망국론’에 빠져 있다. 근거는? “전셋값 상승→가계 빚 증가→소비 침체→경기 하락. 이런 사이클이 나라 망할 때까지 무한 반복된다.”



어째 많이 듣던 소리다. 10여 년 전 집값 폭등 때 나왔던 ‘부동산 망국론’ 같다. 왜 무한 반복인가. 놔두면 언젠가 알아서 진정되는 것 아닌가? A는 단호하게 ‘No’ 했다. 지금은 자연 치유가 불가능한 수준이란다. 치유되기 전 몸(경제)이 먼저 죽는단다. 왜 그런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무대책 정부·국회 때문이다. 게임의 룰이 바뀌었는데, 정부·국회는 딴 데서 놀고 있다. 병의 원인과 처방도 모른다. 머리 아픈데 다리에 붕대 감고, 발 가려운데 신발 밑 긁는 격이다.”



그럼 어쩌나? A는 “뭐가 됐든, 뭐든 당장 해야 한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자료부터 찾아봤다. 다음은 2010년 이맘때 신문기사다.



"조모 부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전셋값 때문이다. 집주인은 1억원을 올려달라고 한다. 조 부장은 ‘3년간 맞벌이로 번 돈을 다 털어도 모자란다’며 ‘아무리 아껴 쓴들 전세금 마련할 방법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어떤가. 오늘 자 기사라 해도 믿지 않겠나. 신문기사 하나만 봐도 3년 전이나 오늘, 미친 전셋값은 여전했다. 분명 악순환은 이어지고 있었다. 급기야 얼마 전 현대경제연구원은 경기 침체의 4대 주범 중 하나로 전셋값을 꼽기도 했다(다른 셋은 고령화, 소득분배 악화, 일자리다).



 미친 전셋값의 불씨는 2008년 금융위기 때 지펴졌다. 5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국회는 도대체 뭘 한 걸까. 하기야 대책을 수없이 쏟아내긴 했다. 새 정부 들어서도 세 차례나 대책을 냈다. 그런데 별무신통이다. 왜 그럴까. 전세 제도는 ‘한국 온리(only)’다. 관료들은 외국 사례를 참조해 대책을 내놓는 데 전문가다. 그런데 외국엔 사례가 아예 없다. 여기서 패닉이다. 과거 한국 사례를 참조할 수밖에 없다. 과거 전셋값 폭등은 집값 폭등과 맞물려 있다. 전셋값이 먼저 오르고 집값이 따라 오르는 구조다. 집을 더 짓고, 전셋값을 지원해주면 해결됐다. 지난 몇 년 대책도 그랬다. 패러다임 바뀐 걸 무시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전셋값이 오르는 초유의 상황이었지만, 대책은 달라진 게 없었다. 병이 아예 다른데도 증세만 보고 옛 처방을 그대로 쓴 셈이다. 새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 바람에 정부가 지원한 싼 대출은 되레 전셋값을 올린 일등공신이 됐다. 더불어 가계 빚 1000조원 시대도 앞당겼다.



 전세는 두 가지 신화를 먹고 산다. 하나는 부동산 불패, 또 하나는 고금리다. 둘 중 하나라도 작동해야 살 수 있다. 2008년 이후 두 신화는 모두 깨졌다. 그 결과 전세의 종말→월세로의 전환은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속도다. 너무 빠르다. 요즘 전·월세 물량 10채 중 4채는 월세다. 2년 전엔 10채 중 3채였다. 내년엔 5대5가 될 전망이다. 이 속도를 늦춰야 한다.



사실 국회 통과가 안 돼 그렇지 웬만한 전·월세 대책은 다 나와 있다. 분양가 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부터 분양주택 축소와 임대주택 확대까지. 방향은 맞지만 2% 부족하다. 당장 숨넘어가는 환자에게 소식·운동 같은 장수 비결은 먼 나라 얘기다. 모르핀과 수술이 더 급하다. 모르핀 중엔 야당이 주장하는 전·월세 상한제도 있다.



 이왕 미친 전셋값, 제정신 정책만으론 안 된다. 역발상도 필요하다. 예컨대 세입자 지원에서 집주인 지원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전셋값을 안 올리고 3년 유지하면 양도세를 면제해주거나 그만큼 소득공제를 해주는 식이다. 부자들 배를 불린다며 배 아프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잠시 참자. 당장 전셋값 올라 더 피해 보는 건 서민이다. 전셋값이 제정신 차려야 나라 경제도 제정신 차릴 것 아닌가.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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