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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오빠부대' 몰고다닌 최초의 음악가는?

중앙일보 2013.11.08 00:20 11면 지면보기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 대통령 후보자가 여자고등학교를 방문해 자신의 많은 나이를 의식해 세대격차를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여고생들을 ‘빠순이’라고 불렀다가 호된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빠순이’를 소위 ‘오빠부대’와 동의어로 잘못 알고 귀뜸해 준 한 참모가 빚은 실수라는데 음악가로서는 최초로 수많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리스트의 팬 중에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춘희의 실제인물이었던 마리 뒤플레시스 등 실제 ‘빠순이’ 그룹도 적지 않았다.



리스트가 피아노 연주를 하면 숙녀들은 보석을 무대에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 기절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오빠부대의 원조는 누구일까. 조선시대 이전의 궁중음악가들이 그 엄격한 궁궐의 법도 아래에서 상궁이나 무수리들로부터 구애 공세를 받았을 리 만무하고 장바닥을 떠돌던 소리꾼들 또한 미천한 상민의 신분이었으니 오빠부대가 있었을 턱이 없다.



일제 강점기인 192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애수의 소야곡’ ‘울며 헤진 부산항’ ‘무정천리’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고 해방 이후에 1961년 가수협회 회장을 지내다 이듬해에 작고한 고 남인수. 본명이 강남수인 그야말로 우리나라 최초의 오빠부대를 만든 장본인이다. 남인수의 공연이 끝나면 장안의 기생들이 인력거를 보내 그를 데려오려 했고 그의 음반을 축음기에 걸어놓고 육혈포로 자살까지 했다 하니 오늘날 대중가수들의 인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논외로 하면 리스트의 첫 여자는 그가 스물 한 살에 사랑을 나눈 아델르 라프뤼나레드 백작부인이었고 그 다음은 그보다 6년 연상인 다구 백작부인이었다. 10년간 지속된 다구 백작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 중 첫딸 블랑단과 막내인 아들 다니엘은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유일하게 오래 산 둘째 딸 코지마는 리스트의 제자 한스 본 푈로와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바그너에게 재가하는데 천하의 바람둥이 리스트도 극구 반대하다가 나중에야 바그너와 화해하고 이를 인정한다.



이후 그를 잠시 스쳐간 여인들을 살펴보면 뒤마의 소설 ‘동백꽃 아가씨’의 주인공인 마리 뒤플레시스, 훗날 바바리아 국왕 루드비히 1세의 정부가 되는 롤라 몽테즈 등 소위 직업여성 그룹과 마리아 파블로브나 대공부인,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등 귀족에 이르기까지 열거하기에도 벅차니 리스트는 여인들의 리스트도 그만큼 복잡하다. “리스트가 있기 전에 리스트는 없었고 리스트 이후에도 리스트는 없다.” 리스트 사후에 평론가들이 그를 치켜 세우며 하는 칭찬의 말이다.



리스트는 36세가 되던 1847년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만나는데 이 때부터 리스트의 생애는 그 이전의 리스트와 그 이후의 리스트로 다시 한 번 나누어진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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