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처음은 달콤, 끝은 신선 … '마지막 잎새' 속 그 와인

중앙일보 2013.11.08 00:10 Week& 11면 지면보기
포트 와인용 포도는 포르투갈 북부 도루강 주변 가파른 경사지에서 자란다. 포트와인 업체 ‘테일러’의 ‘퀸타 데 바르겔라스’와이너리에서 도루강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군데군데 계단식 포도밭도 보인다.


혹 ‘포트 와인’이 생소하다면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를 떠올려볼 일이다. 폐렴을 앓고 있는 존시에게 친구 수가 말했다. “수프라도 좀 먹어봐. 그래야 나도 그림을 그릴 마음이 생기지. 그림을 빨리 그려주고 돈을 받아야 아픈 너한테 포트 와인을 사줄 수 있어.” 떨어지는 담쟁이 잎을 바라보며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친구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끄집어낸 화제가 바로 ‘포트 와인’이었다.

포르투갈에서만 생산되는 '포트 와인'



포트 와인은 이름에서부터 포르투갈 냄새가 난다. 실제로 포르투갈의 항구도시 포르투에서 이름을 따왔다. 대서양을 향하고 있는 포르투는 포트 와인 수출의 거점이 되는 항구다. 포트 와인은 발효 도중에 주정(酒精·포도주를 증류해 얻은 브랜디)을 집어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인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이다. 주정을 집어넣는 순간 효모가 죽어 발효는 멈춘다. 미처 발효되지 않고 남은 포도의 당 성분 덕에 포트 와인 맛은 달콤하다. 짧은 발효, 긴 숙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풍미는 몸져 누운 환자가 솔깃해할 만큼 매력적이다.



포트 와인은 포르투갈에서만 생산된다. 매년 가을 포르투갈 북부 도루(Douro)강 주변 가파른 언덕에서 자란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담그고 이듬해 3∼4월 서쪽 항구도시 포르투로 옮겨 숙성시킨다. 1692년부터 포트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포르투갈 와인 업체 ‘테일러(Taylor’s)’의 와인 메이커 데이비드 귀마렌스(47)를 만나 포트 와인의 매력과 즐기는 법에 대해 물었다. 가업을 이어 여덟살 때부터 포트 와인 만드는 일을 해왔다는 그는 “아까운 포도로 왜 다른 와인을 만드냐”며 포트 와인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테일러’의 와인 메이커 데이비드 귀마렌스. 짙은 루비색 포트 와인을 들고 있다.
데이비드 귀마렌스를 만난 곳은 포르투 항구에서 동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도루강변 ‘퀸타 데 바르겔라스(Quinta de Vargellas)’ 와이너리였다. 그는 막 수확을 마친 포도밭을 바라보며 “가파르고 험난한 경사지인 데다 덥고 건조해 포도를 재배하기 거친 환경이다. 토양도 돌이 많아 아주 척박하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영근 포도는 농축된 맛을 갖고 있어 포트와인 만들기 딱 좋다”고 말했다.



-올해 포도 작황은 어땠나.



“모르겠다. 수확기에 닷새 동안 비가 오는 바람에 포도 질이 떨어졌다. 그 전까진 정말 좋았는데…. 올해 ‘빈티지 포트’를 생산할 수 있을지는 18개월 이후 알 수 있다.”



포트와인에는 종류가 여럿이다. 수확 연도를 표기하는 ‘빈티지 포트’와 빈티지 구분 없이 여러 와인을 섞어 오크통에서 장기 숙성해 내놓는 ‘토니 포트(tawny port)’, 백포도로 만든 ‘화이트 포트’, 1∼3년 숙성시킨 와인을 섞어 만든 ‘루비 포트’ 등이다. 값은 루비 포트와 화이트 포트가 싸고, 포도 질 좋은 해의 ‘빈티지 포트’와 숙성 기간이 40년을 넘어서는 ‘토니 포트’가 비싸다. 귀마렌스는 “와인을 담글 때의 목표는 늘 ‘빈티지 포트’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빈티지 포트는 2년만 오크통에서 숙성시키고 그 이후엔 병으로 옮겨 숙성시킨다. 병 속에서 맛과 향이 천천히 발전하고 응집된다.



1 포르투 항구 주변 ‘빌라 노바 데 가이아’언덕 창고에서 숙성 중인 ‘테일러’의 포트 와인.
-아직도 포도를 맨발로 으깨 와인을 담그는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보통 레드 와인은 포도 속 당이 모두 알코올로 변할 때까지 끝까지 발효시키지만, 포트 와인은 당이 절반 정도 분해됐을 때 발효를 중단시킨다. 발효 시간이 짧은 만큼 레드와인을 만들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포도 껍질에서 색깔과 향을 끌어내야 한다. 그 묘책이 바로 발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직 발보다 더 좋은 기계는 개발되지 못했다. 맨발로 밟았을 때 나오는 우아하고 섬세한 맛을 기계는 못 끌어낸다. 포도 수확은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순까지 2주일 동안 진행된다. 포도송이를 일일이 손으로 따서 목욕탕처럼 생긴 커다란 돌탱크에 집어넣고 사람이 들어가 맨발로 으깬다. 작업은 수확기 동안 매일 저녁식사 후 자정까지 이어지는데, 일하는 사람들도 신나 한다. 마치 축제 분위기 같다. 올해는 여섯 살짜리 내 둘째 아들도 거들었다. 나는 여덟 살 때부터 한 일이다.”



-포트 와인의 매력을 꼽는다면.



“포트 와인만큼 오래 숙성시킬 수 있는 와인은 없다. 원래 포트 와인은 오래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포르투갈 와인을 다른 나라에 갖다 파는 동안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섞은 것이 포트 와인의 시작이다. 포트 와인은 긴 숙성 과정에서 깊고 미묘한 맛과 향이 만들어진다. ‘복합미’를 갖게 돼 첫 맛은 달고 끝 맛은 신선하다. 그래서 식사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게 해준다. ‘포트 없는 식사는 끝나지 않은 교향곡’이랄까. 또 포트 와인은 종류에 따라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빈티지 포트는 수확연도의 특징을 담고 있는 ‘타임캡슐’ 같은 존재다. 주로 병에서 숙성시켜 공기 접촉이 거의 없기 때문에 탄닌의 느낌이 살아 있다. 마치 맛에 날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반면 토니 포트는 오크통에서 공기와 접촉하며 숙성되기 때문에 맛이 부드럽다.”



2 ‘테일러’의 와이너리들은 매년 포도 수확기마다 포도를 따고 발로 으깰 사람들을 임시로 고용한다. 수확을 마친 뒤 이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 조촐한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다.


-좋은 포트 와인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



“우선 어떤 토양에서 어떤 품종의 포도를 심을 것인지 잘 결정해야 한다. 그 포도를 언제 수확해 어떻게 섞어 쓸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테일러’에서는 30여 종의 포도를 사용한다. 섞어 쓰는 조합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 또 질 좋은 주정을 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발효를 중단시키기 위해 집어넣는 주정 양이 포트와인 전체 양의 20%를 차지한다. 상당히 큰 비중이다.”



-포트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을 소개해 달라.



“화이트 포트는 토닉워터와 섞어 가볍게 식전주로 마시기 좋고, 숙성 기간이 짧은 루비 포트는 딸기·라즈베리 등 베리류, 치즈, 다크초콜릿 등과 궁합이 잘 맞는다. 빈티지 포트는 디저트 와인으로 제격이고, 숙성기간이 10∼20년 정도인 토니 포트는 견과류와 잘 어울린다. 40년 이상 된 토니 포트는 어떤 상황에서 마셔도 좋은 술이다. 디저트와 함께 마셔도 좋고, 디저트 대신 마셔도 좋고, 굳이 식사자리에서 마시지 않아도 좋다. 와인애호가가 아니어도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다.”



도루(포르투갈) 글·사진=이지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