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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사장도 불신임하는 파격 … '여행박사' 콘텐트의 힘

중앙일보 2013.11.08 00:10 Week& 7면 지면보기
여행박사 사장이 바뀌었다. 여행사 사장이 바뀌는 게 대단한 뉴스일까 싶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참 많은 걸 곱씹게 된다.



여행박사는 신창연(50) 대표가 2000년 직원 3명과 250만원으로 창업한 일본 자유여행 전문 여행사다. 10년쯤 전 ‘1박3일 일본 밤도깨비’ 상품이 메가 히트를 치면서 단박에 메이저 여행사가 됐다. 금요일 밤 비행기를 타고 도쿄(東京)로 날아가 일요일 밤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이 기발한 여정은,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요즘 젊은 층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고든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어느새 여행박사는 국내 4대 여행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현재 총 매출 1600억원이고 직원 수는 220명이다.



세상은 여행박사 하면 일본부터 떠올리지만 여행 업계에는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뭐라고 해야 하나. 험한 표현이지만 ‘골 때리는 회사’ 정도가 그나마 어울리겠다. 주로 사내 복지제도와 관련한 것이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현재 여행박사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원은 없다. 금연에 성공하면 보상금 100만원을 줬다. 당근만 줬더니 효과가 미미해 채찍도 들었다. 한 팀에 흡연자가 있으면 해당 팀에 연말마다 진행하는 전 직원 가족 동반 해외 워크숍 비용을 안 준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흡연 연좌제였다. 이후로 흡연자가 사라졌다. 회사를 나간 직원도 없었다.



지난 대선에는 전 직원이 투표를 하면 보너스 1억원을 주기도 했다. 전 직원이 서로 투표를 독려했고, 해외 출장 중이던 직원이 투표를 하러 들어왔다. 골프를 시작해 1년 안에 남자 직원이 100타, 여자 직원이 120타 안에 들면 보너스 1000만원을 줬고, 회사 등반대회에 참가해도 돈을 줬다. 아무튼 30개가 넘는다는 여행박사의 복지제도는 하나같이 파격적이다.



여행박사의 이색 제도 중에 임직원 선거라는 게 있다. 팀장부터 사장까지 간부 직원을 전 직원이 투표로 뽑는 제도다. 지난달 25일 26명을 대상으로 선거가 치러졌고, 그 선거에서 신창연 사장이 재신임에 실패했다. 원래 70% 이상 찬성이면 통과였는데, 선거 전에 신 사장이 본인 기준을 80% 이상으로 높였다. 신 사장 지지율은 79.2%였다.



이번 투표에서 팀장 이상 간부 7명이 재신임에 실패했다. 그러나 대표이사 자리는 다른 문제였다. 신창연은 여행박사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이자 대표이사다. 일종의 인기투표가 ‘오너 경영인’ 불신임으로 번진 것이었다. 여행박사는 크게 술렁였다. 수많은 직원이 반대했지만 그는 사퇴 의사를 번복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자리에서 물러난 뒤 신 대표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일부다.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기업 실패와 성공에 대한 기준이 완벽하게 다른 상황에서 나는 여기까지만 해도 성공이라고 믿고 싶다’.



요즘 들어 ‘창조(創造)’란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무언가 새 걸 지으려면 무언가 헌 걸 헐어야 한다. 신 사장의 파격 행보를 지켜보며 콘텐트를 생산하는 기업의 자세를 다시 생각했다.



후임 사장은 29세의 주성진 일본팀장이다. 지난달 29일 확대팀장회의를 열어 선출했다. 여행박사는 일정 매출 이상의 수익을 직원에게 성과급으로 돌려주는데, 성과급 1억원을 기록했던 전설의 고졸 직원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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