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신문고] 김치 먹다 토마토 알레르기 … 가슴 철렁

중앙일보 2013.11.08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서울 잠실에 사는 주부 박영미(41)씨는 최근 가슴 철렁한 경험을 했다.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소풍 중 음식을 먹다 호흡곤란 증상을 겪어 응급실에 실려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은 토마토를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아들이 먹은 음식을 일일이 따져봤다. 놀랍게도 알레르기를 유발한 식품은 토마토가 아닌 포장김치였다. 박씨는 포장김치의 제조 과정을 역추적했다. 그 결과 포장김치가 토마토를 원재료로 하는 다른 제품과 같은 시설에서 제조된 사실을 알아냈다. 김치를 만들면서 전에 생산했던 제품의 토마토 성분이 섞인 것이다. 이른바 ‘교차오염’이다. 박씨는 해당 식품사에 항의했다. 하지만 “포장지 영양표시란에 표기돼 있는 걸 못 보셨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박씨는 “어린아이의 경우 표기를 확인하지 않는 데다 야외에서 음식을 꺼내놓고 함께 먹을 경우 일일이 성분을 확인할 수도 없지 않느냐”며 “피해 책임을 단순히 소비자에게만 돌리려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식품 교차오염' 모르고 당하는데 - 서울 박영미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식품의 교차오염으로 알레르기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많다. 교차오염은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행 축산물 표시기준은 고등어·계란·복숭아 등 13개 품목에 대해 동일한 시설에서 서로 다른 제품을 생산했을 경우 포장지에 관련 사실을 표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음식점에서 가공 식품의 포장지를 뜯고 조리해 내놓을 경우 교차오염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 김치에 토마토 성분이 섞인 사례 외에도 소고기 육포에서 돼지고기, 채소음료에서 땅콩, 아이스크림에서 복숭아 성분이 검출되는 등 전혀 예상치 못한 성분이 혼입된 경우도 많았다. 표시 기준을 지킨다고 해도 영양표시 하단에 작은 글씨로 동일제조 시설 생산 여부가 적혀 있어 소비자들이 파악하기 어렵다.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 중 영양성분 표시를 확인하고 식품을 섭취하는 비율은 24%에 그친다.



 교차오염 알레르기의 경우 소비자들이 피해 원인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업체의 위생관리 소홀로 교차오염이 발생했다 해도 소비자가 직접 성분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가려내기 힘들다. 표시 기준을 위반해도 1차 적발 시 시정명령, 2차 적발 시 품목제조정지 15일에 그쳐 처벌 수위도 낮은 편이다.



 또 표시를 했을 경우 소비자가 피해를 보더라도 별다른 제재 조항이 없다. 현행법상 동일 제조시설 생산 여부만 영양표시란에 명기하면 행정처분을 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시중의 소고기 육포 11개 제품을 합동점검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교차오염이 발생된 사실을 적발했다. 하지만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위생관리 미흡으로 교차오염이 발생해도 표기만 하면 업체에 책임을 물릴 수 없는 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불가피한 재료 혼입으로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 현재로선 관련 사실을 제품에 표시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 환경식품농촌부와 식품기준청에선 교차위험을 막기 위해 같은 생산라인에서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 품목별로 시설의 세척·위생 상태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제조시설 세척 실험을 통해 교차오염을 줄이는 최적의 세척 방법을 찾아 권고하기도 한다.



 한양대 엄애선(식품영양학) 교수는 “표시기준은 식품 위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공급자가 안전관리에 소홀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라며 “알레르기 환자가 지속적으로 느는 가운데 제조 단계에서부터 교차오염 방지를 위한 위생 점검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은 “국내 식품의 교차오염 실태를 정기 점검하고 위생 관리를 체크하는 내용의 입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신문고를 울려 주세요



제보는 e메일(social@joongang.co.kr)을 통해 받습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