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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유럽 의사의 처방전 "한국 바이오약 쓰세요"

중앙일보 2013.11.08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여성들 사이에서 상품명 ‘보톡스’로 널리 알려진 보툴리눔 독소. 단백질로 이뤄진 신경독소 물질이다. 이 단백질 1나노(10억분의 1)g의 가격은 4만∼5만원 정도로 엄청난 고액이다. 금 1g이 4만5000원 정도 하니까 금값에 비하면 10억 배 비싼 셈이다. 최근 국내 바이오업체인 메디톡스가 자체 개발해온 차세대 보톡스에 대해 원조 회사인 미국 앨러간과 3898억원에 기술 이전계약을 했다. 지금까지 보톡스는 단백질을 얼려서 건조한 형태로 판매됐으나 차세대 보톡스는 물에 녹여서 팔 수 있도록 구조가 개선돼 편리하다. 메디톡스는 충남 선문대 생물학과 교수였던 정현호(51) 사장이 교수직을 그만두고 2000년에 세운 바이오기업. 보톡스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체 생산 제품을 공급하면서 시장을 꾸준히 늘려왔고 마침내 원조 회사에 차세대 기술을 이전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토종 바이오기업, 세계로 나가다

 이처럼 금값을 훨씬 뛰어넘는 ‘토종’ 바이오 의약품의 선전이 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워낙 장기간 연구개발(R&D)을 필요로 하는 특성 때문에 그동안 수많은 투자자의 애를 태워온 게 사실. 바이오벤처업계가 틀을 잡기 시작한 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하나둘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초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을 손에 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열심히 해외 시장을 노크한 결과다.



 회사가 설립된 지 10여 년 만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럽에서 바이오시밀러 제품으로 허가받은 셀트리온이 대표적이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한국에 이어 지난 6월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류머티스성 관절염 치료제 ‘램시마’ 판매허가를 받아냈다. 램시마는 미국의 존슨앤드존슨이 연간 30조원의 매출을 올려온 항체의약품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바이오시밀러는 약효와 구조가 같다는 사실이 입증된 단백질 복제약인데 그동안 바이오시밀러의 전례가 없다 보니 허가받는 과정이 지지부진했다. 셀트리온은 2006년부터 물질 개발을 시작해 램시마 개발에만 7년간 2000억원을 투자했다.



 일단 허가를 받아낸 램시마는 지난 9월부터 동유럽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중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본사를 둔 에기스가 동유럽 국가의 판매를 대행하면서 현재 조지아·아제르바이잔·벨라루스·체코 등에 제품 출시를 끝냈다.



 에기스의 판매부문 최고책임자인 피터 마자르 박사는 부다페스트 현지에서 기자와 만나 “그동안 동유럽 국가에서는 레미케이드와 같은 항체의약품이 약효는 좋지만 환자들이 감당하기 힘든 비싼 가격 때문에 수혜를 입지 못했다”며 “한국에서 건너온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는 합리적인 가격이어서 이 같은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에기스는 1913년에 설립된 헝가리 최대 제약사로, 지난해 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실제 미국에서 류머티스성 관절염 환자가 레미케이드와 같은 항체의약품을 비보험으로 투약받을 경우 연간 1만5000∼2만 달러의 치료비가 들어간다. 오리지널 제품가격의 50∼70%인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출시돼야 환자들이 부담을 덜 수 있다. 램시마의 100㎎ 주사제 한 병의 가격은 국내에서 37만892원. g으로 환산하면 370만원 정도로 금값보다 80배 이상 비싸다.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유럽시장에 진출하기 전 전문가들은 오리지널 제품의 판권을 갖고 있는 제약사가 램시마 가격으로 맞출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자르 박사는 “어느 한 국가에서 가격을 낮추면 다른 나라에서도 가격을 깎아줄 것을 요구할 수 있어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첫 바이오시밀러 항체의약품으로 꼽히는 셀트리온의 램시마(왼쪽). 지난 9월부터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은 미국 앨러간의 ‘보톡스’. 앨러간은 최근 거액을 주고 한국 바이오업체로부터 신기술을 사들였다. [사진 셀트리온·앨러간]
 셀트리온 이외에도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국내 여러 업체가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분야다. 삼성이 바이오시밀러 후보 물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동아제약은 일본 메이지와 손잡고 인천 송도에 바이오시밀러 생산 시설을 건설 중이다.



 카엘젬백스의 경우 해외 진출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있다. 아예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세계 첫 췌장암 치료제로 개발해온 GV1001에 대해 영국에서 최근까지 6년간 임상 마지막 단계까지 진행한 상태다.



 그 결과 특정 유전자를 갖고 있는 췌장암 환자의 경우 GV1001의 투여로 평균 535일 생존하는 것을 확인했다. 카엘젬백스는 이 같은 결과를 모아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또한 현재 췌장암에 사용되는 약이 없기 때문에 영국 리버풀의대 및 정부산하기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신약허가를 위한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GV1001은 노르웨이 래디움 병원의 가우더넥 구스타프 박사가 개발한 합성물질로, 16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이다. 모든 세포에는 노화와 관련된 ‘텔로머레이즈’라는 효소가 있는데 암세포에서 이 효소가 많이 검출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효소의 특정 부위를 이루고 있는 16개의 아미노산 서열을 인공적으로 합성해 항암 백신으로 쓴다는 아이디어였다. 카엘젬백스는 GV1001을 항염증치료제로 상용화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유산균 전문인 쎌바이오텍은 1995년 창립 이후 유산균 한우물만 파왔다. 그것도 명실상부한 유산균 종주국인 덴마크의 약국 판매용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에서 지난해 50% 넘는 점유율로 1위에 올랐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적당량을 섭취했을 때 인체에 이로움을 주는 살아있는 미생물을 총칭한다.



 LG생명과학의 경우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서방형(약물을 천천히 방출하는 형태) 성장호르몬인 ‘유트로핀 플러스’로 세계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호르몬은 매일 주사하는 방식인 데 비해 이 제품은 자체 기술로 주 1회 주사로 같은 효과를 낸다. 2017년까지 누적 수출액 20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바이오기업과 제약사들이 기를 쓰고 해외 진출에 나서는 또 다른 배경은 정부가 건전한 건강보험 재정을 위해 약값을 연이어 깎으면서 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보험의약품 시장의 14%에 해당하는 1조7000억원 규모를 일괄적으로 인하한 데 이어 많이 팔리는 약일수록 약값을 10% 정도 떨어뜨리는 사용량-약가 연동제를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해외 진출 사례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성장동력으로 키운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약값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국내 연구개발 투자 및 우수인재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헝가리·노르웨이=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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