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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단체협약? … 해도 너무한 공기업

중앙일보 2013.11.08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어떤 명목과 이유로도 종전보다 임금을 저하시킬 수 없다’ ‘10년 이상 장기근무 때는 안식휴식년제를 시행한다’ ‘제2교섭단체는 인정하지 않는다’ ‘조합원이 업무 중 사망 또는 장애를 입어 퇴직할 경우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 ‘조합원 의사에 반하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는다’….

본지, 117곳 불합리한 단협 사례 단독입수



 기획재정부가 최근 295개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아 정리한 ‘공공기관의 불합리한 단체협약 사례’의 내용 중 일부다. 본지가 7일 단독 입수한 이 자료는 353페이지에 이른다. 기재부의 ‘공공기관 운영 관련 법령 지침’과 다르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노사단체협약 내용을 명시하고, 판단 근거까지 설명했다. 자료에 따르면 295개 공공기관 중 정부지침을 어긴 곳은 117곳으로, 전체의 40%에 달했다.



조합원 인사 땐 사전협의 못박아



 단체협약 중에는 조직개편과 정원 조정 때 노조와 사전협의 해야 하는 등 공공기관 경영진의 인사·경영권을 간섭하거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벗어나는 과도한 휴가와 안식년·특별퇴직금 등이 들어 있는 곳이 많았다. 또 1%의 초저금리로 주택자금을 대출해주고, 대학 등록금을 무상 지원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보이는 규정도 많다. 노사관계 부문에서도 단체협약을 한 노조를 유일한 교섭단체로 규정하기도 했다. 2010년 1월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따르면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하게 됐다. 또 노조 전임자에 대한 최우선 인사처우를 보장한 단체협약을 한 공공기관도 적지 않았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원정도박과 성폭행 등 ‘백화점’ 수준의 비리로 지적받았던 강원랜드는 ‘정년퇴직 조합직원의 직계가족 우선 채용’ ‘연리 1%의 주택자금 지원’ ‘대학생 자녀 입학금·등록금 전액 지원’과 같은 ‘초호화 협약’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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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지질자원연구원도 강원랜드에 못지않다. 이곳 단체협약에 따르면 기관 해산 등으로 조합원의 신분변동이 예상됐을 경우엔 반드시 90일 전 조합에 통보하고 합의해야 한다.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정원을 축소해서도 안 되며, 불가피한 경우엔 노사가 합의해야 정원을 축소·조정할 수 있다. 임금인상은 국가경제나 기관의 경영상황과 무관하다. 협약에 따르면 임금은 물가변동과 실질경제성장률에 따른 임금인상을 통해 실질임금에 반영해야 한다. 또 어떤 명목과 이유로도 종전보다 임금을 내릴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법에는 복수노조를 인정하고 있지만, 지질자원연구원은 단체협약을 통해 ‘제2교섭단체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국립병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정도를 넘어섰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직원과 직원의 직계 존비속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선택진료비의 100%를, 보험진료비의 80%, 비급여진료비의 40%를 감면받는다. 휴직을 해도 혜택은 변하지 않는다. 충남대병원은 직원 가족의 ‘고용승계’를 보장했고, 기자재심의위원회 등 각종 병원위원회에 노조 대표 한 명을 위원으로 임명하게 했다. 충북대병원은 모범직원을 표창할 때 노조에서 추천한 3명을 표창할 수 있도록 했다.



"노조 눈치 보며 철밥통 보장”



 우체국물류지원단의 경우 단체협약 제4조에 직장폐쇄에 관한 사항은 단체교섭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직장폐쇄는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때 경영자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권’이므로 노조와 교섭대상이 아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대표는 회사의 오너가 아니라 임기제 임명직인 탓에 노조의 눈치를 보며 적당하게 합의해 단체협약을 맺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공공기관 지침을 어길 경우 매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통해 성과급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2012년 말 공공기관 총부채 규모가 493조4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국민적 우려가 크지만, 공기업은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철밥통과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고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철저히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아니라 제재 수단도 없어



 문제는 이처럼 공공기관 운영지침을 벗어난 단체협약을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노사 간 단체협약은 정부의 지침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수원지방법원은 ‘공공기관 종사자는 국가공무원법에서 정하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공무원규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며, 정부의 각종 지침은 예산편성의 일반적인 기준일 뿐 이로 인해 기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이 변경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물론 기재부의 지침 중에는 무리한 내용도 적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경영상의 이유로 구조조정 또는 해고 때 노조와 사전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불합리한 단체협약이라고 규정한 게 그런 경우다. 이는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 또는 노조가 없는 경우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근로자 대표에게 해고하려는 날의 50일 전에 통보하고 성실히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게 된다.



세종=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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