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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칼을 꽂다

중앙일보 2013.11.07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파하드 모시리, My Flower, 2013, 칼 설치, 127×425㎝. [사진 갤러리현대]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전시장 흰 벽에 다채로운 색점으로 ‘My Flower’라고 적혀 있다. 둥글게 흘려 쓴 글씨체마저 장식적이다. 그러나 다가가면 이것은, 기성품 단도 580여 개를 꽂아 만든 이미지다. 작가 스스로 ‘연하장 같다’고 했을 만큼 진부하게 아름다운 문구의 색점이 알고 보면 손을 베일 듯 날카로운 진짜 칼들로 이뤄진 것이다. 그 의외성, 모순된 두 가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긴장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란 미술가 파하드 모시리(50)의 국내 첫 개인전 ‘My Flower’의 한 장면이다. 작가가 방한해 화랑 전시장 가벽에 하나하나 칼을 꽂아 만든 이 작품은, 주인을 만나면 벽째 판매될 예정이다.

 모시리는 1979년 혁명기의 이란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칼아츠(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6세에 이민 가 10년 뒤 미국에서 첫 전시를 열었지만 작품은 딱 한 점 팔았다.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다 접고 귀국했으니 미국 생활에 썩 잘 적응하진 못한 듯하다. 이란은 혁명 이후 서구적 가치관을 전면 부인하고 이슬람 율법에 의한 통치를 시작했다. 모시리는 무엇이 이란적 전통인지 물으며, 폐쇄적 이란 사회에까지 들어와 있는 서구 문화의 어색함에 주목했다. “나는 혁명 이후 우리가 정체성을 가혹하게 강요당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권력에 굴복시키기 위해서다…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건 매우 혼란스럽다”고 회고했다.

 그 혼란스러움은 재료 선택에서도 나타난다. 즐겨 쓰는 재료는 칼과 비즈(작은 구슬), 극과 극이다. 그에게 작품 활동은 평면에 칼을 꽂거나 비즈를 수놓는 일이다. “이란 문화에서 장식 미술이란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육성된 예술 형식이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구상 미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장식이 고취됐다…이슬람 문화에서는 추상 미술이야말로 안전한 예술이다. 보기에도 쉽고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해서 검열을 피해 흔한 서구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화면 가득 자수로 나타내거나, 추상화를 닮은 칼 꽂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처럼 익숙한 듯 낯선 이미지로 그는 중동 미술 시장을 이끄는 작가가 됐다.

 우리에겐 먼 나라, 이란의 미술가가 해외에서 어필하는 방법을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를 돌아본다. 전통과 현대, 서구화 속 정체성 갈등, 디아스포라(이산) 등은 비서구권 예술가들의 단골 주제다. 이걸 익숙한 듯 낯선 방식, 공예적 수공이 들어간 유미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서 저들에게 각광받는 현대 미술가들이 있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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