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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탁 트인 정자 … 마음의 문지방을 걷어내야

중앙일보 2013.11.05 00:21 종합 21면 지면보기
서울 국민대 명원민속관에서 김개천 교수가 정자 난간에 기댔다. 그는 “정자는 창도 없고, 문도 없고, 벽도 없다. 그래서 안과 밖이 통한다. 이 시대에는 전통의 현대화가 아니라 현대의 전통화가 필요하다. 현대가 주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건축은 인문학이다.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이다.” 서울 정릉동 국민대 연구실에서 만난 건축가 김개천(54·실내디자인학) 교수의 소신이다. 그에게 집은 곧 삶이다. “어떤 집을 지을 건가라는 물음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 맥이 통한다”고 했다. 건축은 공학이자 동시에 철학이며, 좋은 집은 좋은 인생과 같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김 교수는 개천절에 태어났다. 이름도 ‘개천(開天)’이다. 하늘을 여는 일, 자연을 여는 일이다. 그는 건축에서도 그런 소통을 찾고 있었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⑩ 전통 건축과 소통 - 김개천 국민대 교수

- 동국대 선학과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으로 보이나.



 “숨 쉬는 생명체다. 나는 ‘살아있는 집은 어떤 형식일까’라는 물음을 자주 던진다. 일종의 화두처럼 됐다. 인류가 예전에 만든 집은 죽어 있는 집일지도 모른다.”



 - 집이 죽어 있다니.



 “닫혀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주택과 저택, 성(城)을 보면 알 수 있다. 외부와도, 자연과도 차단됐다. 기본적으로 외부의 무언가를 막기 위한 거다. 폐쇄적이다. 서양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도 그렇다. 담도 높고, 창도 작다. 밖에서 안이 안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에게 ‘죽은 집’은 안과 밖에 뚜렷한 금을 긋고, 집과 자연을 분명하게 나눈 집이다. 안은 안이고, 밖은 밖일 뿐, 둘은 통하지 못한다.



 - ‘살아있는 집’은 뭔가.



 “기본적으로 열려 있는 집이다. 그게 숨 쉬는 집, 생명이 있는 집이다.”



 - ‘열려 있다’라고 했다.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집이다. 자신의 것이 있으면 지키려 한다. 웅크리고, 벽을 치고, 담을 쌓는다. 그 안에 사는 사람도 바깥과 단절되고 만다.”



 - 우리 전통 한옥은 어떤가.



 “한옥도 외부로부터 안을 보호하려는 성격은 있다. 그런데 한옥은 닫힌 구조를 상당히 깨트리려고 한다. 한옥에서 열린 건축의 가능성을 본다.”



 - 한옥에서 가장 열려 있는 구조물은 뭔가.



 “정자(亭子)와 사랑채다. 정자는 자연 속에 홀로 있다. 기둥과 지붕만 있다. 방이 있지만, 문도 없고 창도 없다. 정자와 자연, 둘 사이에는 어떠한 문지방도 없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비유비무(非有非無) 형식이다.”



 - 사랑채는 어떤가.



 “바깥 주인이 머물던 사랑채는 집 바깥으로 나와 있다. 주로 대문 옆에 따로 있다. 반면 안주인이 머물던 안채는 뒤로 들어가 있다. 안채는 닫힌 구조지만, 사랑채는 열린 구조다.”



김개천 교수가 설계한 한 칸집 조감도. 삼면이 열리는 유리로 돼 있고, 실내는 미닫이문으로 방의 크기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김 교수는 책상 위에 도면을 하나 펼쳤다. 올 초 경기 양평에 지은 23평짜리 한 칸 집이다. 집의 북쪽은 벽이고, 나머지 세 면은 열리는 유리였다. 내부는 더 독특했다. 미닫이 문이 가로, 세로로 집의 내부를 가로질러 자유롭게 왔다갔다한다. 방의 크기와 방향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그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큰 방을 만들고, 겨울에는 따뜻하도록 방을 작게 만든다. 해가 뜰 때는 방이 동향을 보게 하고, 해가 질 때는 석양을 보며 식사를 한다. 평수는 작은데 크기는 무한대다. 아이디어를 정자 건축에서 얻었다”고 설명했다.



 - 우리는 행복을 얘기하려 한다.



 “다들 행복의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 동안 건축도 그랬다. 저 멀리 ‘행복’이란 깃발을 설정해 놓고 달려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깃발은 항상 저 멀리 있기 때문이다. 깃발만 좇다 보면 눈앞의 현실을 놓치게 된다. 나는 오히려 ‘행복’은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럼 무엇이 있나.



 “무언가 다른 이름으로 있다. 성취랄까, 만족이랄까, 아님 달콤함, 때로는 슬픔도, 불편함도 행복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있는 것들이다. 총체적으로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을 멀리, 따로 설정해 둔다. 우리가 현실에서 행복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 왜 그런가.



 “눈앞의 현실이 평가절하되고 무시되기 때문이다. 현실이란 항상 ‘부족한 상태’다. 그런 ‘부족한 상태’가 모인 게 우리의 삶이지 않은가.”



 김 교수는 건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례로 세계적인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는 “좋은 건축이란 우주의 핵처럼 순수한 형식이다. 적을수록 풍성해진다(Less is more)”고 말했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20세기 대표적 건축가’로 꼽히는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좋은 건축은 투명한 순수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둘 다 근대적인 방식이다. 정답을 정해두고, 그걸 추구하는 식이다. 근대는 그걸 요구했다. 지금은 다르다. 건축에 정말 정답이 있을까. 나는 거기에 의문을 던진다”고 했다.



 - 불교식 수행을 닮았다.



 “가령 아파트를 보라. 예전의 딱딱 짜인 공식과 틀, 표준화한 정답을 주려 했다. 거기에 편리함과 편안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살아보니 어떤가. 갑갑하다. 획일화한 구조는 지루하다. 장점이라 여겼던 편리함이 이데올로기 비슷하게 굳어진 측면이 크다. 실생활은 다르다. 사람들은 주말만 되면 나무를 찾아서, 공원을 찾아서, 자연을 찾아서 밖으로 나간다. 오히려 집에 있기 힘든 집이다.”



 - 그렇다고 자연에서만 살 수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은.



 “한식 밥상을 보라. 오첩·칠첩 반상에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나온다. 어떤 순서와 조합으로 먹을지 정해진 건 없다. 가지 수의 조합이 무한한다. 밥을 먹고, 김치만 먹을 수도 있다. 굴비가 한 점 얹어지면 또 달라진다. 다시 말해 형식이 자유롭다. 서양식은 다르다.”



 - 어떻게 다른가.



 “순서대로 똑같이 먹어야 한다. ‘고기를 어떻게 구울까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한식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바삭한 고기를 좋아하면 딱딱한 부분을 집어 먹으면 된다. 싫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 좋은 건축도 그런 거다. 필요에 따라 무한히 변화하는 건축이다.”



 실제로 그는 부산에 지은 한 아파트에도 이런 생각을 적용했다. 문을 어떻게 이동하느냐에 따라 방의 크기가 달라지는 구조였다.



 - 왜 무한변화가 중요한가.



 “인간의 본성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이건 무조건 A다’하고 고정하면 곤란하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울수록 좋다. 이불을 펴면 침대가 되고, 걷으면 방이 되는 식이다. 딱히 내 것이 없기에 가능하다. 아무리 좋아도 계속 보면 질린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도 그런 변화와 맞물릴 때 생동감이 있다. 집은 사람을 위한 거다.”



 그는 한마디로 정의했다. “건축은 인간의 삶과 꿈을 담는 배경이다.” 인간이 주인공이지, 건축이 주인공은 아니라고 했다. 건축은 정답을 주지 않고 배경이 될 뿐이다. “인간의 본성이 가장 자유롭고, 편안하게 발현되는 배경이 되는 집. 그게 이상적인 건축이다. 인문학도 건축이다. 정답 대신 배경이 되면 된다. 그걸 배경으로 꽃은 내가 피우는 거다.”



 김 교수는 “꽃을 가만히 보라”고 했다. “꽃은 억지로 찾아내서 피워 올린 게 아니다. 장미의 본성이 흘러나온 거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문학은 삶의 배경이다. 그 위에서 자신의 본성이 흘러나오는 삶을 살면 된다. 그게 우리의 꽃이다. 굳이 행복이란 게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김개천 교수의 추천서



김개천 교수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자기 고집이 없다. ‘이것만 돼’하는 자기 주장이 없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좋은 건축에는 자기 주장이 없다. 그래서 계속 움직인다. 자신의 경계가 없다. 느슨하고, 유연하게, 무한히 열린다”고 말했다.



건축과 철학(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동문선)=프랑스의 지성 장 보드리야르와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토론한다.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현대적 현상들의 허구와 한계에 대해 짚는다. 그들은 ‘진정한 창작의 전제 조건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급진적·즉각적·창의적이어야 하며, 축적된 유산을 극복하는 일로서 특이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신착란병의 뉴욕(램 쿨하스 지음, 김원갑 옮김, 태림문화사)=미국 뉴욕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만성이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된 건축들이 만들어낸 도시’다. 공공을 부르짖는 건축가들로부터 무시돼 왔던 곳이다. 그러나 거만함과 폭력적인 이유로 제한 없는 풍부한 콘텐트를 만들어낸다. 각 계층의 욕구표출과 해방감이 하나로 담긴 뉴욕을 들여다 본다.



월간 론리 플래닛(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지구촌 곳곳을 다룬 여행전문지. 창의적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에는 기를 살려주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과 질문하는 능력, 독립성을 들 수 있다. 인문학의 시작은 세상을 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잡지는 관념의 세계로 안내하지 않는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얻게 하는 실용서이자 안내서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즐거워진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개천 교수=1959년 부산 출생. 미국 패서디나 아트센터에서 환경디자인으로 학사, 중앙대 대학원에서 건축학으로 석사, 동국대 선학과 박사 과정 수료. 현재 국민대 실내디자인학 교수. 대표 건축물로 서울 목동의 조계종 국제선센터, 백담사 만해 마을(한국건축가협회상) 등이 있다. 올해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근정포장을 받았다. 저서로『명묵의 건축』 『미의 신화』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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