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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권력은 가고 예술만 남았다

중앙일보 2013.10.31 00:54 종합 28면 지면보기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것은 왕가에 대한 능멸인가. 수석 궁정화가가 초상화 제작을 위해 화실을 찾아온 왕실 가족을 일렬로 세워놓고는 침을 뱉은 꼴 아닌가. 장엄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저들은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4세(1748~1819) 일가다. 왼쪽부터 왕의 여동생인 마리아 호세파 공주, 이 그림을 그린 궁정화가 고야 자신, 장래 페르난도 7세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왕자 등이다.

 세로 280㎝, 가로 336㎝, 압도적 크기로 그려진 이 인물화의 중심은 왕이 아니라 왕비다. 왕비 마리아 루이사가 어린 남매를 양옆에 데리고 있고, 그 옆에 배불뚝이 국왕이 서 있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까. 평론가들도 그림의 현대적 파격에 놀랐는지 “복권에 당첨된 것을 뽐내는 지방의 제빵업자와 그 아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테오필 고티에), “이들의 표정에서 일견 유령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어린이들은 공포에 질려 있는 듯하며 왕은 거만하지만 몽매한 표정을 짓고 있다”(젠슨)라고들 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0∼1801, 캔버스에 유채, 280×336㎝,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고야는 1799년 수석 궁정화가가 됐다. 왕은 이듬해 이 집단 초상화 제작을 명했고, 고야는 면밀한 준비 끝에 이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모델마다 한 달 이상 기초 작업을 했고, 본격적 제작에만 1년 넘게 걸렸다. 렘브란트처럼 캔버스 안 왕족들에게 은은한 빛이 쏟아지도록 했고, 벨라스케스처럼 화폭 안에 화가인 자신도 그려 넣었다. 왕비의 금빛 드레스, 왕의 가슴 한 가득 주렁주렁 달린 훈장도 한껏 화사하게 그려 지배자들을 흡족하게 했다. 이 그림이 어떻게 주문자들을 만족시켰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착각해서일까, 혹은 절대 권력자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독특한 미감의 기준을 갖고 있는 걸까. 고야가 왕실 가족들 틈바구니에 그려 넣은 자기 얼굴은 거리를 둔 채 어둠 속에 비켜나 있는 모습이다. 그는 직업 화가로서 최고의 완성도를 추구한 동시에 냉정한 통찰을 잃지 않았다.

 카를로스 4세는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한 스페인을 통치한 왕이다. 신하 고도이에게 정사를 맡겼다. 왕비의 정부(情夫)였다. 두 사람은 스페인을 프랑스의 위성국으로 전락시켰다. 가운데 왕비가 서 있는 파격적 구도는 화가가 당시의 실세를 알아보고 아부한 건가, 혹은 ‘도덕이 땅에 떨어져 있는’ 왕가를 비꼬기 위한 건가. 이 왕실 사람들은 고야의 화폭 속에서 ‘속물적 민낯을 드러낸 지배층의 대표 이미지’로 남았다. 결국 승리한 것은 화가의 자의식이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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