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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가기 싫다" 사표 내는 국책연구기관 직원들

중앙일보 2013.10.21 00:43 종합 6면 지면보기
세종시 금남면의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전 공사 현장. [프리랜서 김성태]


20일 세종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금강 남쪽 행정중심복합도시 4-1 생활권. 해발 201m의 괴화산을 가운데 두고 곳곳에 완공을 기다리며 분주히 공사 중인 건물들이 눈에 띈다. 특히 내년 1월 입주를 앞둔 한국개발연구원(KDI) 건물은 왼쪽으로 짙푸른색 유리창 외벽과 오른쪽 흰색 타일 외벽공사가 이미 마무리됐다. 이곳에는 올 연말부터 내년 말까지 국토연구원과 KDI를 비롯해 서울·수도권의 국책연구기관 16곳이 헤쳐 모인다.

5년 새 524명 … "절반이 지방 이전 탓"
교육과정평가원 57명 떠나고
KDI 젊은 박사 중심 51명 이직



 인근 식당 등 상가에선 새로 입주할 연구기관 맞이에 들뜬 분위기다. 한우고깃집 ‘명품한우타운’을 운영하는 김승배씨는 “우리 집이 KDI에서 제일 가까운 한우고깃집”이라며 “그간에도 세종청사 손님이 많았지만 내년엔 손님이 더 늘어날 것을 대비해 식당 안팎으로 공사도 다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 원주민과는 반대로 연구단지에 입주할 국책 연구기관들의 분위기는 착잡하다. 대부분 서울에 있는 이들 연구기관은 혁신도시지원특별법과 계획에 따라 올해 말부터 2015년까지 정해진 지방도시로 이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지방 이전이 코앞에 닥치자 국책연구기관에는 ‘지방으로 가기 싫다’며 회사를 옮기는 연구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최근 국무조정실(옛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KDI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떠나는 연구원이 52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이 가장 많은 곳은 충북 음성으로 이전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다. 2009년부터 최근까지 직원 276명 중 57명이 평가원을 떠났다. 세종시 연구단지로 입주하는 국가 경제정책 싱크탱크 KDI의 인재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 전체 직원 254명 중 51명이 직장을 옮겼다. 이직자는 2009년만 하더라도 5명에 그쳤지만, 이듬해 8명, 2011년과 2012년엔 각각 14명까지 늘어났다. 올해는 6월까지만 해도 이미 10명이 KDI를 떠났다. 특히 지난 7월에는 박현 공공투자관리센터 소장까지 서울시립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연구원이 술렁댔다. 박 소장의 경우 KDI 내 중요 보직을 맡고 있지만, 부인의 직장이 서울인 데다 아이들도 아직 학생이라 KDI를 떠나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KDI 관계자는 “올 들어 젊은 박사들이 하도 많이 자리를 옮기고 있어, 이젠 누가 나갔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라며 “나간 사람의 절반 이상이 지방 이전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KDI 다음으로 인재유출이 심각한 곳은 역시 세종시로 이전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다. 128명 직원 중 2009년부터 올 6월까지 모두 45명의 연구원들 떠났다. 비율만으로 보면 35%에 달한다. 세종시로 옮겨가는 16개 연구기관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관계 연구기관이 한곳에 모이니 협동연구에도 도움이 되고, 정부부처도 옆에 있어 정책연구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울산(에너지경제연구원)과 충북 진천(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남 나주(농촌경제연구원), 부산(해양수산개발원) 등으로 외따로 떨어져야 하는 연구기관들은 사실상 ‘섬’에서 연구를 하는 셈이다.



 이학영 의원은 “연구기관 지방 이전 계획이 밝혀진 2006년부터 인재유출이 시작됐지만, 올 들어 그 추세가 배 가까이 늘었다”며 “정부는 국책연구기관들의 연구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책연구원을 떠난 박사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대학이다. 지난 5년간 전체 이직자 524명 중 딱 절반인 262명이 서울과 수도권의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으로 많이 가는 곳은 지방 이전 대상이 아닌 공공기관으로, 58명에 달했다. 사기업 연구소로 간 연구원들도 42명이다.



세종=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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