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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메르트-황창규 대담 … 실패하는 젊음, 공포를 덜어주자

중앙일보 2013.10.21 00:34 종합 8면 지면보기


“한국과 이스라엘은 자원빈국은 물론 안보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또한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다.” 에후드 올메르트(68) 전 이스라엘 총리는 본지가 마련한 황창규(60) 성균관대 석좌교수와의 대담 자리에서 “두 나라가 손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 또한 “한국에 비해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은 창업 초기부터 경쟁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배울 게 많다”며 두 나라의 협력을 적극 반겼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제14회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이날 대담은 지난 16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진행됐다.



▶올메르트 전 총리(올)=이스라엘은 우선 회사나 공장 규모가 커야 우위를 점하는 시장에는 뛰어들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800만 명의 매우 작은 나라다. 따라서 이스라엘인들은 비교우위를 가진 분야에 집중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스라엘은 더 큰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에서 다 쓰이는 기술을 우리가 내놓아서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황창규 교수(황)=한국의 창업 역사는 이스라엘에 비해 짧다. 그러나 현재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과정이 많이 단순화됐고, 대출자금 지원 등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에 비해 한국의 스타트업들은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재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에 필요한 건 M&A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연약한 스타트업들을 튼튼하게 만들고,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일이다.



세계 최고 도전하는 ‘후츠파 정신’



 ▶올=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서울의 조그마한 포목점에서 출발한 회사가 현재는 전 세계에 4만3000명의 임직원을 두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15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는데 전 세계에서 세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에 모두 사업에 진출했다고 한다. 한국은 이런 대기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선 국내보다 더 큰 시장이 필요하고, 대량 생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비해 작은 규모인 이스라엘이 잘할 수 있는 건 제품이 아닌 아이디어를 파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은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방법이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온갖 약점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힘을 줬다.



 ▶황=이스라엘에는 ‘후츠파’ 정신이라는 게 있다. 직역하면 ‘건방지고 당돌하다’는 뜻이 되겠지만, 시장에서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부딪치는 정신’이다. 가장 우수한 인재들에게는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창업을 권장하는 전통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정신은 잘 이해되고 있다. 30년 전 우리가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을 때 국내 산업계는 불모지였다.



40대는 늦어 20대에 도전을



에후드 올메르트(오른쪽) 전 이스라엘 총리와 황창규 성균관대 석좌교수가 16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대담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올=누구도 실패를 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 또한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다만 이스라엘은 탄생부터 위험을 감수하고 시작한 나라다. 이스라엘인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주로 20대들이 창업하기 때문이다. 20대들은 40대처럼 실패에 따르는 위험을 계산적으로 보지 않는다. 아내가 있고, 자식이 둘 있고,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 위험에 도전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황=한국의 젊은이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야 한다. 이스라엘의 교육과 시스템, 기업가 정신이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의 실리콘와디 역시 실패의 산물이다. 창업 기업의 실패는 한국에서는 오명이 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통상적인 프로세스로 여겨진다. 성공을 이루려는 기회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그게 한국과 이스라엘의 차이점이다.



 ▶올=이스라엘은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나라다. 예를 들면 150만 러시아 유대인이 이민을 왔고,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면 굉장한 혁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 그런 사람들은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도 하다. 또한 유대인들은 수천 년간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법을 익혔다. 아이디어·교육·문학 같은 창조물은 우리가 어디 사느냐에 관계없이 만들어졌다. 이런 점들이 유대인의 DNA를 더욱 날카롭게 다듬었고, 성공에 기여하게 만들었다.



 ▶황=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서 위험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80%는 대기업에서 벌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없이는 한국이 언제까지나 기술·산업적인 측면에서 선진국으로 남아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점이다.



 ▶올=이스라엘 정부의 지원도 한몫했다. 예를 들면 ‘치프 사이언티스트(Chief Scientist)’ 프로그램이 그렇다. 산업무역부가 총괄하는 이 프로그램은 매년 창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수천 명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에 소속되지 않는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이들이 내는 아이디어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중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창업 아이디어를 추려내는 것이다. 물론 이 중 70%는 또 실패하게 된다.



 ▶황=이스라엘 정부는 요즈마 펀드의 성공사례를 갖고 있다. 요즈마 펀드가 글로벌 투자자를 끌어들여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성공적으로 지원한 점이 인상적이다. 2011년 올메르트 전 총리를 만났을 때 “혁신적인 기술이 있는 곳이라면 비록 그곳에서 전쟁이 한창이더라도 투자자는 당연히 몰려온다”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 한국 정부도 요즈마와 같은 방식으로 스타트업이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에 노출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올=많은 국가가 교육 수준은 높지만 혁신 수준은 낮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은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에 굉장한 성공을 가져왔다. 하지만 고민도 있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 5.4~5.6%라는 성과를 올려왔지만 이 수치가 빈부격차를 메우지는 못했다. 새로운 기술에서 성과를 냈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정부가 할 일은 이것이다.



군 복무 시간 유용하게 만들어줘야



 ▶황=젊은이들이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유용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이스라엘의 최고 명문은 대학이 아닌 군대다. ‘최고 중의 최고’라는 엘리트 부대 ‘탈피오트’는 우수한 인력을 뽑아 군 복무 기간 중 다양한 기술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에서도 탈피오트 제도가 곧 도입된다고 한다. 이공계 학사 이상 취득자를 선발해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된 부문에서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 대학생들의 창의성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이 점만큼은 이스라엘을 본받아야 한다.



 ▶올=양국 정부가 협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람들과 그들의 비즈니스를 높이 평가한다. 한국인의 열정과 역동성을 믿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나라들은 계속 발전하는 데 지치고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필립스도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기업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궈낸 성과가 그들이 혁신을 지속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한국이 협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지금의 성공을 이어나가는 방법은 현재의 강점을 혁신과 접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혁신의 나라다. 이런 점에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사회=최지영 산업부 차장

정리=심재우·조혜경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에후드 올메르트(68)=2006∼2009년 이스라엘의 12대총리로 재직하면서 해외 투자유치와 연구개발(R&D)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 이스라엘 창업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73년 28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보건부 장관, 예루살렘 시장, 부총리 겸 산업무역노동부 장관, 재무장관 등을 지냈다. 현재 인공지능·로봇사업 창업에 주력하는 ‘제네시스 앤젤스’ 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황창규(60)=2000년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를 맡아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개척한 인물. 메모리 반도체의 발전 속도가 ‘무어의 법칙’을 앞선다는 ‘황의 법칙’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3월부터 3년간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불리는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으로 일하며 미래 성장에너지 발굴을 위해 힘썼다. 올 4월부터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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