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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다 컸으니 … " 도장 찍자는 황혼의 아내들

중앙일보 2013.10.21 00:26 종합 12면 지면보기
초등학교 교사였던 A씨(70·여)는 공무원이었던 B씨(73)와 1966년 결혼했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면서 1남2녀를 낳았지만 B씨의 외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92년에는 간통죄로 남편을 고소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생각해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각서를 받고 고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등은 계속됐고 B씨의 폭력까지 이어지자 참다 못한 A씨는 결혼 45년 만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수원지법 가사1부(부장 정승원)는 지난 7월 “두 사람은 이혼하고 B씨는 A씨에게 위자료 5000만원과 재산 중 35%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년차 이상 부부 파경, 작년 첫 신혼이혼 앞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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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늘며 “이젠 나도 인간답게 … ”



 의류 판매업을 하는 C씨(63·여)는 지난달 남편인 D씨(67)와 이혼했다. 75년 결혼했지만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는 판단에서다. 부부는 함께 사업을 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해외 진출 욕심이 있었던 남편이 2009년 이후 자기 몫의 지분을 갖고 베트남에 진출한 뒤 사업에 실패하면서 사이가 악화됐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 김귀옥)는 지난달 “각자의 경제활동 방식을 내세우면서 별거에 이른 후 양측 모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들의 이른바 ‘황혼이혼’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일 대법원이 발간한 ‘2013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11만4316건의 이혼사건 중 결혼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가 3만234건으로 전체의 26.4%를 차지했다. 2009년 22.8%였던 황혼이혼 비중은 꾸준히 늘면서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반면에 동거 기간이 0~4년인 부부의 ‘신혼이혼’은 지난해 2만8204건(24.6%)으로 나타났다. 2009년 27.2%였던 데서 매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황혼이혼 건수가 신혼이혼을 앞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황혼이혼 증가의 가장 큰 이유로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아내들이 더 이상 참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김진옥 서울가정법원 공보관은 “재판업무를 하다 보면 ‘자식들을 다 키워 놓고 이제는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아내가 많다”며 “과거 가부장적 관습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산분할제, 경제적 불안 해소



91년 민법 개정과 함께 도입된 재산분할 제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발표한 ‘이혼 시 재산분할에 관한 최근 판례 분석’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이 판결한 재산분할 사건 493건 중 아내에게 50%가 넘는 비율을 인정한 판결은 22.5%로 크게 늘어났다. 98년엔 5.4%, 2005년에는 9.4%에 불과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의 이원재(사회학) 교수는 “과거 이혼을 꺼리는 결정적 이유였던 경제적 어려움이 재산분할제도 도입으로 일정 부분 해소된 점도 황혼이혼 증가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재산을 형성한 세대가 은퇴해 노년층에 접어든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아버지 재산에 욕심을 낸 자녀들이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부모의 이혼을 부추기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아들에게만 재산을 몰아줬거나 혼외자식이 있는 경우에는 일부 자식들이 엄마를 부추겨 이혼소송을 하게 한다”며 “남편 사망 후에는 혼외자식까지 합쳐서 비율대로 상속받게 돼 자신의 몫이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혼 사유로는 성격 차이를 꼽은 부부가 절반에 가까운 47.3%를 차지했다. 경제문제(12.8%), 배우자의 외도(7.6%), 가족 간 불화(6.5%), 정신적·육체적 학대(4.2%) 등이 뒤를 이었다. 이혼 당시 미성년 자녀의 수는 ‘무자녀’가 47.1%로 가장 많았으며 1명(26.3%), 2명(23.0%) 순이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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