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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전화번호 생각 안 나 … 혹시 나도 디지털 치매?

중앙일보 2013.10.21 00:07 경제 7면 지면보기
최근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최모(37)씨는 회사 전화로 부인에게 연락을 하려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던 부인의 휴대전화 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최씨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숫자를 더듬어가며 세 번의 시도 끝에 부인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최씨는 “스마트폰에 저장한 단축번호 ‘1’만 머리에 맴돌더라”며 “자꾸 스마트폰에만 의존하다 보니 기억력이 많이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단축키 등 의존도 심각
국민 10명 중 3명 이상 증상 나타나
방치하면 심리적 공황 빠질 수도
기기 사용 줄이고 신문 읽으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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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 디지털 기기가 현대인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면서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태블릿PC·컴퓨터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기억력이나 계산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증상을 뜻한다.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 등이 생각나지 않거나 자주 다니던 길도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헷갈리는 현상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까진 ‘뇌질환’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각종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20일 온라인 설문조사 기업인 두잇서베이가 582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3분의 1(33.7%)은 가족인 부모·형제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직계 가족 외에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를 묻는 질문에 36.2%가 1~2개라고 답했으며, 한 개도 외우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16.7%로 집계됐다. 6개 이상 기억하고 있는 응답자는 15.6%에 그쳤다. 디지털 치매가 불면증 · 두통처럼 현대인에게 흔한 증상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디지털 치매’의 저자인 독일의 뇌 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 박사는 “길 찾기는 내비게이션이, 연락처 암기는 휴대전화가 대신해주는 요즘 환경이 정신 활동을 이용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퇴보시킨다”며 “디지털 치매는 무능해도 되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꼬집었다. 단축키나 버튼 하나로 기억력과 사고능력을 대신해주는 디지털 장비들이 ‘기억하려는 노력과 습관’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디지털 치매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사람의 기억은 뇌의 ‘해마’라는 부위에서 주로 담당한다.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마의 위축을 가져오고 기억 용량이 줄어든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량이 줄어드는 것처럼 뇌도 쓰지 않으면 기억·인지기능이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날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거나 ▶주변 사람과 의사소통의 80% 이상을 스마트폰 등으로 하고 ▶애창곡의 가사를 보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는 경우가 잦다면 디지털 치매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디지털 치매가 당장 일상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계속 방치할 경우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리적 공황에 빠질 수도 있고, 뇌의 특정 부분의 발달과 기능에 부조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디지털 치매의 치료법으로는 ‘디지털 다이어트’가 첫손에 꼽힌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적절한 휴식과 함께 뇌를 자주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일기를 쓴다거나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거나, 간단한 계산은 머릿속으로 해보는 것이 그 예다. 정서적 안정이나 원만한 대외 관계를 위해서라도 디지털 기기의 사용 시간을 통제하는 게 좋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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