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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노조원 성추행 오락가락 판결

중앙일보 2013.10.18 01:50 종합 14면 지면보기
기륭전자 노조원이었던 박모(51·여)씨는 파업 집회에서 다른 노조원을 폭행한 혐의로 2010년 4월 체포됐다. 서울동작경찰서에서 조사받고 나온 박씨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서 사무실 안에 설치된 간이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중 경찰관 김모(45)씨가 화장실 문을 열어 성추행당했다는 취지였다. 모욕감을 느껴 손발이 마비돼 응급실에 실려갔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김씨는 “화장실에서 전화통화를 하길래 열린 문틈으로 나오라고 말했을 뿐 박씨의 알몸을 본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박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용변 중 문 열었다" 주장에
대법은 "성추행 개연성 있다"
민사 "용변 보기엔 힘든 상황"



 1년6개월간의 공방 끝에 지난해 6월 대법원은 박씨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핵심공소사실인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중 김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점을 검사가 입증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형사 사건 확정판결 3개월 후인 지난해 9월 이번엔 박씨가 김씨를 상대로 민사상 손배해상 소송을 제기했다. 성추행과 무고, 재판 과정에서 한 위증 등으로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번엔 박씨가 성추행당하지 않았다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단독 심창섭 판사는 “김씨가 박씨를 성희롱했다는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다만 김씨가 위증한 점 등은 인정되는 만큼 위자료 200만원 지급 판결을 내렸다”고 17일 밝혔다. 형사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사 사건도 따라야 하지만 중대한 문제점이 있다면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라고 한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에서 쟁점은 두 가지였다. 김씨가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의도적으로 열고 들어갔는지와 박씨가 용변을 보느라 하의를 벗고 있어서 성추행에 해당하는지였다.



 대법원은 화장실 문이 닫혀 있었다고 봤다. 폐쇄회로TV(CCTV)에 김씨가 손잡이를 잡은 다음 몸을 앞으로 숙였고 이어 당황한 기색으로 물러나는 장면이 찍힌 점 등에 비춰 김씨가 닫힌 문을 열었다고 봤다. 하지만 심 판사는 화장실 문이 상당히 뻑뻑했던 점에 주목했다. 김씨가 실제로 닫힌 문을 열었다면 살짝 미는 데 그치지 않고 상당한 힘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용변을 보고 있었다는 박씨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근거는 화장실에서 나온 박씨가 격렬히 항의하며 ‘화장지를 주지 않아 손으로 대변을 닦았다’고 구체적인 진술을 한 점. 하지만 심 판사는 “변기가 더러워 엉덩이를 들고 용변을 봤다”는 박씨의 또 다른 진술을 바탕으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



 여성이 실제로 용변을 보려고 했다면 화장지도 없고 너무 더러워서 엉덩이를 들고 용변을 봐야 하는 곳으로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판단했다. 법원 관계자는 “형사 사건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성추행이 없었다는 점이 증명이 안 됐다는 의미이고 민사 사건은 입증책임이 있는 원고의 성추행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영(법무법인 세한) 변호사는 “형사와 민사 사건의 판결이 다를 경우 진실이 뭔지 모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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