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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차라리 국정교과서로 회귀하든가

중앙일보 2013.10.18 00:18 종합 32면 지면보기
강홍준
논설위원
2008년이 금성사였다면 2013년은 교학사였다. 5년 전엔 이명박정부와 보수언론이 돌팔매질에 나섰다면 지금은 민주당 등 야당과 진보언론이 교과서 두들겨 패기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격의 선봉은 정치인이나 언론인 같은 역사 비전문가가 도맡았다. 2008년엔 금성사 『한국근현대사』를 좌편향 교과서로, 올해는 교학사 『한국사』를 질 떨어지는 극우 교과서로 몰아붙였다. 이처럼 교과서를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의 양상과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사는 검정교과서이며,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마련한 집필 또는 검정기준에 맞춰 저자가 교과서 내용을 기술해야 한다. 기준에 맞지 않게 쓴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처럼 저자의 성향대로, 또는 출판사의 맘대로 쓰는 교과서가 분명 아닌데 왜 이런 다툼이 반복될까.



나는 5년 전 금성사 교과서를 공격해본 경력이 있다. 공격대열에 가세하는 사람이 늘면서 교과서를 둘러싼 싸움은 반복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금성사, 교학사 모두 집필·검정기준을 통과한 교과서였다. 금성사 교과서는 2002년 검정합격 판정을 받았으나 결국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후 집중적으로 좌편향 지적을 당했다. 결국 교육과학기술부가 저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손질에 나섰다. 교학사 교과서는 검정과정에서 “김구·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기술했다”는 ‘아니면 말고’ 식 공격을 당했으며, 지난 8월 검정합격 판정을 받은 뒤엔 수백 군데에서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국편이 합격 판정을 내려도 교과서 다툼은 여전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준이 잘못된 것일까. 차라리 기준을 놓고 논쟁이 벌어져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국회의원이나 기자 같은 비전문가들이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만 큰 이들 두 부류는 집필 또는 검정기준을 놓고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 된다. 무식이 용기라고 이번 교육부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국사 교과서 8종을 놓고 수능 문제를 풀어봤더니 ○○교과서가 가장 점수가 잘 나왔다는 보도 자료를 내놨다. 요즘 말로 빵 터졌다. 이 분야에 전문성이 없으니 이런 한심한 일이나 하고 있다.



 교과서 다툼이 제대로 된 논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책임은 역사학자들이 져야 한다. 책임 있는 중견 학자들이라면 초·중·고교생이 배우는 교과서 집필이 아무리 돈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내팽개칠 수는 없다. 교과서를 통해 후세대가 배워야 할 역사적 가치를 분명히 전수하는 일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2013년 검정 심사에서 합격한 초등·고등학교 교과서 통계를 보니 54본 가운데 47본이 좌편향 출판사에서 내놨다는 자료를 봤다. 교육감이 인정하면 학교가 교과서로 쓸 수 있는 인정도서는 제대로 된 심의조차 없이 학교에서 유포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 편식 문제가 걱정스러운데 이런 우려가 국회 또는 언론에서나 맴돌 뿐이다.



 1990년대 말 정부가 국정교과서에서 검인정교과서로 전환할 때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국가의 획일적인 기술 방식으로 교과서를 내는 나라는 북한 등 일부 독재 후진국에 불과하다, 국가 독점 교과서 콘텐트는 시대착오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기술이 달라질 수 있다, 민간이 참여하는 콘텐트가 다양성과 내용상 경쟁력이 있다 등등.



 기준에만 부합하면 교과서를 발행할 수 있는 현행 체제에서도 이렇듯 반복적으로 교육의 중립성 침해, 편향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가가 발행하는 국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 싶다. 남을 두들겨 패는 데 쓰는 에너지를 생산적인 역사 논쟁으로 이어가자는 것이다.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가 수능 필수로 전환되는 걸 계기로 삼아서 말이다. 물론 회귀가 시대착오적이긴 하다. 하지만 검정합격 교과서가 과연 검정체제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나 생각해보자. 안타깝게도 좋아진 지질을 빼면 그렇지 않다. 이런 교과서로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기성세대는 가르친다. 참, 답이 없다.



강홍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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