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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워싱턴의 정쟁에 발목 잡힌 세계 경제

중앙일보 2013.10.18 00:14 종합 34면 지면보기
미국이 가까스로 국가부도를 면했다. 미 하원은 재무부가 예고한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시점을 1시간30분 앞둔 16일 오후 10시30분(현지시간), 상원에서 넘어온 예산 및 국가부채 상한 합의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양보와 타협이 실종된 미 정치권의 극심한 파당주의 탓에 미국과 세계 경제가 동반 침몰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다. 16일째 지속된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을 끝내고, 국가 디폴트 사태를 피하기 위해 예산안과 국가부채 처리를 내년 초까지 한시적으로 미뤄놓은 데 불과하다. 시한폭탄의 바늘을 잠깐 뒤로 돌려놓았을 뿐이다. 내년 1월 15일까지 예산안 합의가 안 되면 연방정부 기능은 다시 정지된다. 국가부채도 16조7000억 달러인 현행 한도를 상향 조정한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현 상한선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뿐이다. 내년 2월 7일까지 여야가 상한선에 합의하지 못하면 국가 디폴트 위기는 재연된다.



 예산안이 의회 통과를 못해 정부 기능이 정지되고, 부채 상한을 못 늘려 국가가 부도 위기를 맞는 한심한 상황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극심한 정쟁에 기인하고 있다. 양당은 서로를 국정의 파트너가 아니라 적(敵)으로 보고 있다. 타협은 곧 패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특히 소수 강경파인 티파티 세력에 휘둘려 공화당 지도부는 제대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셧다운도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안(오바마케어) 시행을 막기 위한 티파티의 결사 항전 탓이었다.



 워싱턴의 정쟁은 미국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의 정쟁에 발목이 잡혀 세계 경제가 출렁이며 피해를 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미 정치권의 대립 탓에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안 통과가 지연돼 세계 경제가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2011년 8월에는 정치권의 이견으로 국가부채 한도 조정이 늦어져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기도 했다.



 셧다운의 여파로 4분기 미 경제성장률은 당초 예상보다 0.6~1%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미 금융계는 전망하고 있다. 당연히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디폴트 사태가 현실화했다면 리먼브러더스 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파장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1조2800억 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한 세계 최대 채권국 중국부터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강대국의 지위를 남용해 세계 경제를 위기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중국이 미국을 비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로마가 망한 것은 외침 탓이 아니다. 게르만족의 침입은 최후의 일격이었을 뿐, 근본 원인은 방만한 재정과 극심한 정치적 분열에 있었다. 워싱턴의 정쟁은 미국의 신뢰와 리더십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며 미국과 세계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 정치권은 책임을 통감하고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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