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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바리캉 전쟁

중앙일보 2013.10.18 00:13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9년 전 일이다. 한국이용사회는 보건복지부에 탄원서를 냈다. 미용실에서는 머리를 깎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근거는 공중위생관리법이었다. 이 법 2조 1항 4호는 이렇다. ‘이용업이라 함은 손님의 머리카락 또는 수염을 깎거나 다듬는 등의 방법으로 손님의 용모를 단정하게 하는 영업을 말한다’. 바로 밑 5호는 ‘미용업이라 함은 손님의 얼굴·머리·피부 등을 손질하여 손님의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영업을 말한다’고 돼 있다.



 이용사회는 4호의 ‘깎거나’라는 표현에 집중했다. 미용실에선 깎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실질적으론 이발기인 바리캉(Bariquant) 사용 여부를 문제 삼았다. 바리캉 쓸 일이 여자는 별로 없으니 결국은 ‘남자는 이용실, 여자는 미용실’이 탄원의 최종 목표였다. 복지부는 난감했다. 남자 출입을 막기는 어려운 노릇이니, 쇠퇴해 가는 이용실을 위해 미용실이 영역을 지켜줬으면 하는 뉘앙스만 흘렸다.



 정부 해석은 아리송했지만 시장의 선택은 분명했다. 2002년 3만여 개였던 이용실은 지난해 말 2만 곳 수준으로 줄었다. 미용실 수는 10만 개를 훌쩍 넘는다. 바리캉 전쟁의 싱거운 결말은 이용실의 대응에서 비롯됐다. 이용사회는 행동했다. 삭발도 하고, 복지부에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삭발하듯 끝장을 보는 자세로 ‘왜 위기에 처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1990년대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이용이든, 미용이든 과거보다 자주 하게 됐다. 더 다양하고 나은 서비스가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간 미용실에 익숙해지면서, 미용실 가는 게 이상할 게 없어진 미래 남성 소비자의 성장도 놓쳤다. 야릇한 분위기의 일부 이용실은 ‘건전 이용실’로 가는 걸음까지 쭈뼛거리게 했다. 깃발은 들었지만 쇠락의 진짜 이유에는 천착하지 못한 것이다.



 9년 후 골목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이번엔 이용실만이 아니다. 미용실도, 빵집도, 수퍼마켓도 아우성이었다. 지난해부터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이제 법정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의 결성이 목전에 있다. 설립만 되면 정부의 소상공인 진흥 예산(올해 1조1378억원)의 상당액을 지원받거나 위탁받아 집행하게 된다. 기존의 경제 5단체에 이어 ‘경제 6단체’로 부를 만하다.



 그런데 자중지란이다. 소상공인들은 창립추진위원회와 창립준비위원회를 각각 만들고 서로 다툰다. 비리·무능력 같은 단어가 오간다. 골목의 비전을 내놓지는 못하고, 중소기업청 탓만 한다. 지향점은 못 보고 손가락만 바라본 격인 바리캉 전쟁이 떠오른다.



목소리를 높이느라, 행동하느라, 혹은 주도권을 잡느라 정작 ‘왜’를 잊고 있는 것 아닌가. 깃발만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골목의 아우성이 잦아든 자리에 남은 골목의 아귀다툼이 씁쓸하다. 내 세금을 이런 단체에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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