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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응용한 새 패션도 구상 … 전통의 재구성, 느낌 아니까

중앙일보 2013.10.18 00:02 Week& 11면 지면보기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 바틱을 현대화한 `알레이라 바틱`의 올해 여성복 디자인(1·2·3). 현대 패션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디자인이지만 전통바틱 기법을 계승, 제작해 독특한 멋이 난다.


“전통에 현대성을 가미해 사람들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인도네시아 패션 브랜드 ‘알레이라 바틱(Alleira Batik)’의 대표이자 총괄 디자이너인 리사 미하르자(사진)의 말이다. 미하르자 대표는 인도네시아 전통 의상 ‘바틱’을 기본 삼은 제품을 만들어 현대판(版) 전통의상 대중화에 성공한 사람으로 통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한복을 응용한 현대식 패션 브랜드인 셈이다.

인도네시아 '바틱 패션' 디자이너 리사 미하르자



평범한 주부였던 미하르자 대표가 브랜드를 만든 지 이제 9년째. 신생 기업 대표이지만 유명 경영컨설팅회사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기업가’에도 2011·2012년 연속 선정됐다. 세계 문화계 리더들에게 한국 문화의 매력을 알리고, 서로 다른 문화 간 소통 방안을 찾는 문화소통포럼(CCF·Culture Communication Forum) 행사장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달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이사장 최정화)이 주최한 CCF 2013에는 세계 각국 문화·예술계를 이끄는 인물 16명이 참가했다. 미하르자 대표의 이야기에서 우리 전통 패션의 계승 가능성도 찾아봤다.



-‘바틱’이 무엇인가.



“인도네시아 전통예술의 한 종류다. 천을 지칭하거나, 어떤 옷 모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비단 같은 것에 초로 그림을 그리고 세심하게 염색하는, 일종의 예술 양식이 바틱이다. 인도네시아 옛사람들이 이렇게 만든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요즘 인도네시아에선 평소에도 전통의상을 입나.



“바틱과 같은 옷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쉽게 입진 못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바틱을 만드는 것 자체가 굉장히 까다로운 일종의 예술 기법이라 대중적인 옷이 되기 어렵다. 전통 바틱을 입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비싼 가격과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디자인 탓이다.”



알레이라 바틱은 여성복뿐 아니라 아동복(4)과 남성복(5) 라인도 갖추고 있다. [사진 알레이라 바틱]
-‘알레이라 바틱’은 전통 바틱과 어떻게 달랐나.



“아주 싸지도, 매우 비싸지도 않은 중간 가격대로 일단 시작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연회에 참석할 만한 옷은 2000만원이 넘는 것도 만들긴 하지만, 우리 브랜드 보통 옷은 10만~50만원 정도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바틱을 너무 좋아했다. 아름다우니까. 그런데 대중이 접하기엔 너무 비싸고, 너무 예술적인 디자인도 많았다. 안타까웠다. 그래서 전통 바틱 디자이너인 친구를 꼬드겨 내 집 한켠에서 300만원 창업자금으로 브랜드를 시작했다. 평범한 전업주부, 현모양처였던지라 남편한테 비밀로 하고 조용히 시작했다.”



-남편에겐 왜 숨겼나.



“남편은 부동산업을 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이다. 인도네시아 사회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업주부였던 아내가 갑자기 사업하겠다는 걸 남편이 반기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2005년 둘째 아이 낳은 직후였는데 ‘현대적인 바틱을 만들어 팔면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남편에게 말하면 분명히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걸 알았다. 사업이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궤도에 오른 뒤 얘기해야 ‘당장 집어치우라’고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처음엔 숨겼다.(웃음)”



-가격은 어떻게 낮췄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을 단순화시켜 비용을 아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가격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이었다. 예를 들면 인도네시아 전통에 나오는 어떤 이야기의 한 장면이 그려진 옷, 이런 걸 누가 요즘 입고 싶어하나. 그래서 바틱의 기법을 살리면서도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 요소로 무늬를 바꿨다. 전통 바틱 디자이너들은 ‘저런 옷 만들면 못써’라며 욕을 했다. 하지만 바틱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람들이 입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색상이 무척 화려한데.



“색상 부분도 전통 바틱과는 많이 다르다. 전통 바틱 색상은 점잖은 편이다. 갈색과 회색으로 이뤄지거나, 검정과 하양을 조합한 게 많았다. 화려한 색감으로 이를 표현하는 게 대중의 눈에 들 것이라 확신했다. 이 부분 역시 전통 바틱 디자이너들에게 여전히 심심찮게 비난받는 부분이다. 그들은 여전히 ‘알레이라 바틱’이 ‘진짜 바틱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총괄 디자이너이자 대표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브랜드 컨셉트나 유명 인사를 활용한 영업 전략 등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2011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 덕분에 브랜드가 크게 성장했다. 아세안 정상회의가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는 걸 2010년 알게 됐다. 정상회의 운영본부 쪽에 ‘정상들에게 바틱 의상을 제공하고 싶다’고 수차례 연락했다. 거절당하면 안 하면 되는 거니까 무작정 도전한 거다. 재밌는 건, 우리 회사만 제안을 했다는 거다.(웃음) 우리 아이디어가 맘에 들었는지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각국 정상들이 우리 바틱을 입었다. 그렇게 더 많이 알려졌다.”



-알레이라 바틱을 입는 유명인 중에 인도네시아 대통령 며느리도 있다.



“아니사 포한이다. 수실로 밤방 유도유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며느리인데 모델 출신으로 미모가 뛰어나다. 대중적인 인기도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 바틱을 입어 보지 않겠느냐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이런 사람이 입어야 사람들이 바틱을 친숙하게 여길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들도 입고 싶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무작정 e메일을 보냈다. 몇 달은 답이 없었고, 거절하겠다는 답도 여러 번 받았지만 계속해서 요청했더니 결국 우리 브랜드 홍보대사가 됐다.”



-한 국가의 전통의상이 현대 패션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려면.



“전통만 고집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이 시대 대중이 그 옷을 즐길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 브랜드가 지금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사랑받는 건 요즘 사람 취향에 맞기 때문 아니겠나. 요즘 사람에게 옛날 옷을 그대로 입으라면 누가 좋아하겠나. 인도네시아에선 연회 복장 규정에 ‘턱시도 같은 공식 정장/바틱’을 요구하는 행사도 많이 늘었다. 서양 복식 위주인 현대사회에서 바틱이 이런 대접을 받을 정도로 매력적인 옷이 되었다는 뜻이다.”



-한복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매우. 알다시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더 느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복을 공부하는 중이다. 한복을 소재로 해서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인도네시아 기업이 만드는 현대 한복 패션’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웃음)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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