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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민 기자의 '살림의 신'] 살림이 왜 어렵냐고? 예술이니까

중앙일보 2013.10.18 00:02 Week& 9면 지면보기
볕 좋은 가을. 뽀얗게 빨아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 코에 대면 햇살 향이 난다. 그게 이불이라면, 그날 밤 잠자리는 최고급 이집트산(産) 순면 침구에 버금갈 만큼 산뜻할 터다. 어쩌면 특급호텔 침실도 저리 가라다. 제대로 한, 세탁의 힘이다.



세탁은 살림살이에서 큰 부분이다. 소소하게 매일 갈아입을 속옷·양말 정도는 기본이요 의복에 수건, 침구까지 더하면 양이 상당하다. 잊지 않고 꾸준히 해대야 하는 일상적인 살림, 녹록지 않은 일이다. 살림 사는 아낙네의 고된 노동요(勞動謠)에 빨래터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걸 보면 예부터 빨래는 그만큼 힘든 가사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물론 요즘 세탁의 8할쯤은 세탁기 몫이다. 냇가에 빨랫거리 이고 지고 나가, 찬물에 언 손 호호 불어가며 방망이질 해대는 아낙의 노고는 잊힌 지 오래다.



한데 빨래는 살림꾼의 고된 일일 뿐 아니라 의식적인 행위이기도 했다. 깨끗한 의복을 차려입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면 기본이 빨래였고, 더럽혀진 무언가를 물로 씻어내는 행위 자체에 ‘정화’ 같은 의미가 부여됐다.



보송한 새 옷 기분이건 제의적 의미의 세탁이건 빨래의 기본 속성은 노동에 가깝다. 게다가 예전 노동요를 무색케하는 발명품, 세탁기를 보자면 그야말로 빨래의 과학이다. 수직으로 세운 통이든, 수평으로 눕힌 통이든, 통을 돌려 물살의 힘을 이용하는 게 세탁기의 기본 원리다. 빨래터에서 할 작업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기계 안으로 집어넣은 게 세탁기다. 세탁력을 높이기 위해 온갖 물리 법칙이 동원됐다.



물살의 세기에 따라, 통이 돌며 생기는 물의 낙차에 따라 세탁력은 차이가 나고 빨랫감이 엉키지 않게 하는 것도 관건이다. 이른바 ‘빨래 물리학’ 덕분에 세탁기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 여기에 화학의 급속한 발전이 힘을 보탰다. 세제는 물론이고 각종 세탁 첨가제가 개발됐다. 빨래를 거듭해도 섬유가 상하지 않게 하는 것, 묵은때를 더 지워내는 것, 심한 얼룩을 빼고 생생한 염색을 지속케 하는 것, 향긋한 냄새가 솔솔 풍기게 하는 것 등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 모두 화학 발전 덕분이다. 게다가 요즘엔 화학 성분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씩 커지다 보니, 천연 성분을 응용한 세탁 첨가물도 많이 나오는 추세다. 천연 성분 활용에도 과학, 즉 화학적 분석이 기본 바탕이다.



고성능 세탁기며 각종 첨가제를 똑같이 갖췄대도 세탁 결과는 다르다. 과학적 결과물을 조합해 최상의 세탁물을 얻는 건 이용자 각자의 몫이다. 빨랫감의 양, 세제의 농도, 첨가제의 종류 등 따져야 할 것도 조합의 가짓수도 많다. 그러니 머리 쓰는 자, 지혜로운 자, 과학자 버금가는 현명한 이의 빨래는 결과도 다르다.



‘살림, 까짓게 뭐 그리 어렵다고!’란 명제는 그래서 뭣 모르는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요즘은 경지에 이른 살림꾼을 ‘리빙 아티스트’라 부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예술적인 살림꾼, 살림을 ‘예술적으로’ 해내는 살림에 있어선 신(神)과 같은 존재란다. ‘리빙 아티스트’의 시대, 살림도 예술인 시대다.



◆다음주 수요일(23일) 저녁 6시50분, JTBC에서 새 예능정보 프로그램 ‘살림의 신’이 첫선을 보인다. 정지영 아나운서가 MC를 맡아 배우 성병숙, 개그우먼 이경애, 방송인 이선진·황은정 등과 함께 살림 고수의 각종 비법을 꼼꼼하게 알아본다. 첫회는 ‘세탁의 신’ 편이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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