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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옛 동거남의 정자 기증

온라인 중앙일보 2013.10.18 00:01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찰리 채플린



여기 한때는 ‘동거남’이었던 남자친구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 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아빠’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소송을 합니다. 이제 겨우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은 3년에 걸친 지루한 소송 끝에 아빠를 찾았습니다. 법원이 “인공수정 아빠라도, 사실혼 관계였다면 아버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이번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다섯 살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내용은 각색합니다.



#쌍둥이 엄마의 이야기



아침은 전쟁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쌍둥이 어린이집 가방부터 싼다. 애들을 흔들어 깨운다. 여러 차례 이름을 불러야 실눈을 뜨고 꿈지럭거리는 두 아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반은 얼러주고 반은 겁을 주면서 아침을 꾸역꾸역 먹인다. 어린이집 등원 차량에 아이들을 밀어넣고 나면 오전이 다 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아이들 생각에 어금니를 깨물게 된다. 벌써 3년. 나는 아이들을 위해 옛 동거남을 상대로 ‘양육비’ 소송 중인 싱글맘이다. 내 이야기는 이렇다.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아이 둘을 온전히 키워내기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게 엄마 아닌가.



6년의 동거, 그리고 ‘여동생’의 등장



그와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났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채팅에서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몇 달 뒤 실제로 본 그는 생각 이상이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박사 공부도 할 거라고 했다. 지적인 그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생활비는 직장에 다니고 있던 내가 댔다.



그는 다정다감한 스타일이었다. 날씨가 궂으면 이내 문자가 왔다. “자기야,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있다가 비도 온다네. 내 맘처럼 흐려. 자기야, 보고 싶다.” 회사 일이 힘들었지만, 달콤한 그의 문자로 피곤이 풀어지는 듯했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그는 해외로 6개월간 연수를 가기도 했지만 e-메일이나 전화를 자주 했다. 공부를 마치는 대로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아버지 칠순 때엔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흥이 나신 부모님은 친지들에게 그를 ‘식만 앞둔 우리 사위’라고도 소개도 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웨딩박람회도 가고, 그의 학교에서 한다는 결혼식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결혼 이야기를 하겠다며 그가 시골집에 내려가기 전까지는 둘 사이에 문제는 없었다. 시골집에 간 그로부터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전화가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여동생’이라고 했다. “요즘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오빠가 안 가르쳐 주네요.” 그가 부모님께 아직 결혼 이야기를 못 꺼냈나 싶었다.



“오빠에게 직접 들으셨으면 좋겠어요.” 가능한 예의바른 목소리로 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로 여동생은 내게 연락을 자주 했다. “자기와 통화한 사실은 오빠에겐 비밀로 해달라, 부모님이 오빠 결혼을 반대한다.” 여동생으로부터 예비 시댁의 소식을 들었을 땐 마음이 무거웠다. 궁금했지만 그에게 어찌 돌아가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꾹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여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오빠가 부모님의 결혼 반대에 부딪혀 신경쇠약 진단을 받았다. (두 사람이) 헤어졌으면 좋겠다. 아버지도 우신다.”



청천벽력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미 6년 넘게 같이 살아왔다. 친정에선 “언제 식을 올리느냐”며 기다리신다. 사랑하는 그와는 절대로 헤어질 수가 없다. 혹시 아이라도 갖게 되면 반대하는 부모님 마음을 조금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선 더욱 암담한 소리를 들었다. 그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생긴 아이를 수술로 떠나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두 차례 임신을 더 했지만 유산이 됐다. 의사는 내게 여러 차례 유산으로 자연임신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추천해준 방법은 단 하나. 인공수정(시험관 아기)이었다.



“인공수정하려면 각서 쓰자.” 어차피 결혼하면 아이를 낳을 텐데. 그에게 인공수정으로라도 아기를 먼저 갖자고 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여동생이 펄쩍 뛰었다. 임신만은 안 된다는 거였다. 여동생은 내게 모질게 말한 게 미안했던 듯 “몸 아프지 말고 울지도 말아요”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인공수정을 놓고 그와 말다툼을 하게 됐다. 그와 연락도 줄어들었지만, 아기만은 포기할 순 없었다. 내게 따뜻한 그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는 각서를 요구했다. 각서를 쓰지 않으면 정자를 제공할 수 없다고 버텼기에 그가 불러준 대로 썼다. “임신 출산, 육아, 양육에 있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와의 다툼 끝에 헤어졌지만 진짜 헤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공수정을 하고 얼마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시험관 아기 시술로 네쌍둥이가 되었는데, 네 아이를 모두 키울 수 없으니 선택유산을 하자”는 거였다. 배우자를 데려오라는 병원의 말. 나는 그를 설득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모두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같이 가 달라”는 내 말에 그는 “여동생과 연락하라”며 매몰차게 굴었다. 뭔가 이상했다. “왜 선택유산을 하는데 여동생이 필요하냐”고 따져묻다 여동생이 ‘여동생’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문자를 주고받던 여동생은 그의 1년 넘은 여자친구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렇게 결혼이란, 일말의 희망은 사라지게 됐다.



#법원, “인공수정 아빠도 아빠다”



출산 이후 혼자 아이들을 키우던 엄마는 쌍둥이 ‘생부’를 상대로 친자 인지(認知) 소송을 냈다. 이미 헤어진 사이었지만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서였다. 남자 측은 “배우자가 아닌 상황에서 정자만 기증했을 뿐, 출산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썼다”며 항변했다. 정자를 정자은행에 기증한 것이나 진배없는 행위였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서울가정법원은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있고 정자제공자가 특정돼 있다는 점”을 이유로 쌍둥이 엄마의 손을 들었다. “아빠가 될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찾을 아이들의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쌍둥이 엄마는 법원 판결로 위자료 3500만 원과 과거 양육비 1600만 원을 받게 됐다. 친권과 양육권도 엄마에게 돌아갔다. 법원은 “임신하기도 전에 작성된 각서로 양육에 관한 사항을 합의했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복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법원이 직권으로 양육에 필요한 사항을 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결로 아이들은 생부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매월 50만 원의 양육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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