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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 친필 학계 첫 공개 하루 전 … 진위 논란

중앙일보 2013.10.16 01:33 종합 2면 지면보기
고려 태조 왕건의 친필인가, 조선 문필가 고산(孤山) 황기로의 글씨인가.


"정몽주가 친필 구해 만든 백원첩"
내일 국학진흥원 학술대회서 발표
전문가 "조선 중기 유행한 광초체"
김영복씨 "황기로 서첩 글씨 동일"

 15일 공개된 왕건의 친필 글씨를 두고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날 17일 열릴 학술대회 ‘영남 유림의 절의와 사림정신’에서 태조 왕건의 친필 글씨가 실린 『백원첩』이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된다고 발표했다. 이날 진흥원이 공개한 『백원첩』 속 왕건의 글씨 사진은 이백의 시 ‘소사(所思)’로 ‘그리워하는 바/ 동림은 손님을 배웅하는 곳/ 달 뜨자 흰 원숭이도 우네(후략)’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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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날 공개된 글씨를 본 전문가들은 ‘왕건의 글씨일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지학자 김영복 옥션 단 대표는 이 글씨가 태조 왕건의 것이 아니라 조선 중기의 문필가 고산(孤山) 황기로(1525~75?)의 글씨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최근 고산 선생의 미공개 서첩을 새로 발견했는데 이 서첩에 실린 고산의 시가 『백원첩』에 실려 있다는 시의 서체와 내용이 일치한다”고 했다. 고산 황기로는 퇴계(退溪) 이황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조선 중기의 명필로, 힘있게 휘갈겨 쓰는 광초체(狂草體)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학예사도 “이 글씨는 조선 중기에 유행한 광초체다. 고려 초에 광초체가 쓰인 기록이 없고 비교할 만한 왕건의 글씨도 남아있지 않아 왕건의 친필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어떻게 『백원첩』에 실리게 되었을까. 책에는 1387년 8월 고려 말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가 당대의 문사 13명과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모임을 가지면서 왕건의 친필을 공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몽주가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만난 유총마(劉<9A18>馬)라는 사람에게서 왕건이 썼다는 이태백의 시 두 편 중 한 편을 얻었다는 것이다. 왕건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916년 태봉국을 토벌할 때 유총마의 선대인 유덕양(劉悳梁) 장군에게 써준 시다. 왕건의 글씨는 『백원첩』 중 ‘고려왕태조유묵’이라는 별도의 장에 담겨 있다.



 『백원첩』은 동화사 모임에 참석했던 홍노의 후손인 부림 홍씨 가문이 1926년 입수해 보관해 왔다. 현재 이 책의 소장자인 홍대일(70·화학) 계명대 명예교수는 1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잘 보관하고 있으며 그동안 외부에는 자료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비밀에 싸여 있던 책의 내용을 계명대 홍원식(철학과) 교수가 17일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책이 편집되는 과정에서 왕건의 시 대신 다른 이의 글씨가 실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동국 학예사는 “사진상으로 본 글씨라 시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조선 후기나 일제 강점기에 책이 만들어지면서 왕건의 글씨 대신 같은 내용을 담은 고산의 시가 포함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사 전문가인 국민대 박종기(국사학과) 교수는 “『백원첩』의 실체에 대해서는 학계에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책의 내용과 태조 왕건의 친필 여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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