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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중앙일보 2013.10.16 00:16 종합 23면 지면보기
우주 정거장의 망원경을 손보고 있는 스톤 박사(왼쪽·샌드라 불럭)와 베테랑 우주인 맷(조지 클루니). 두 사람에게 곧 재난이 닥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일찍이 이런 우주영화는 없었다. 우주에서 조난당한 과학자를 주인공 삼은 3D영화 ‘그래비티’(원제 Gravity, 17일 개봉, 알폰소 쿠아론 감독)는 영화라는 매체가 우주라는 공간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준다. 종전의 할리우드 SF영화들이 텅 빈 우주에 외계인이든, 지구인이든 뭔가를 가득 채웠다면, ‘그래비티’는 정반대를 선택했다. 망막한 무(無)를 그 자체를 응시하고, 삶의 의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텅 빈 우주에 나 홀로 살 수 있을까 살아야 할까 …




초반 17분의 롱테이크 … 생생한 우주체험



 영화의 시작은 무선통신 소리만 들리는 검은 화면이다. 이어 푸르른 지구가 정면에 크게 보이고 우주에서 일하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이렇다 할 효과음이나 음악도 없이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우주정거장 망원경에 새 시스템을 설치하는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불럭)다. 그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기까지, 무려 17분의 롱테이크(long-take·장면 전환 없는 긴 촬영)가 이어진다. 우주에 널린 무와 고독에 집중한다.



 최첨단 촬영기술로 재연한 ‘그래비티’의 사실적 풍경은 무중력 우주의 느낌을,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경이를 체험하게 한다. 갑작스런 재난이 닥쳐오는 건 우주의 신비를 충분히 그려 보인 다음이다. 낡은 인공위성을 파괴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쏘아 올린 미사일이 잘못돼 인공위성의 연쇄충돌이 일어나고, 부서진 위성의 잔해가 우주인을 덮친다.



 생존자는 스톤 박사와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뿐. 얼마 뒤 박사는 노련한 우주인 맷마저 잃는다. 초보 우주인 스톤 박사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지구에 돌아갈 우주선이 있는 중국 우주정거장으로 가야 한다.



 스톤 박사가 겪는 침묵의 시간은 ‘아폴로 13’(1995·론 하워드 감독)의 긴박감을 뛰어넘는다. ‘아폴로 13’이 고장 난 우주선에 갇힌 우주인들의 역경을 가족애와 더불어 눈물겹게 그렸다면, ‘그래비티’는 우주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두려움에 집중한다. 스톤 박사의 시점으로 본 광활한 우주의 모습이 삽입되는 이유다. 험난한 여정 끝에 우주선에 올라탔지만 또 다시 죽음의 위기를 감지한 스톤 박사는 눈물을 흘리며 삶을 포기할까 고민한다.



샌드라 불럭 ‘조난당한 과학자’ 열연



 영화는 묻는다. 손쉬워 보이는 죽음과 고통스러운 삶 중에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누구라도 삶에 좌절할때 직면할법한 문제이자, 그 누구도 대신 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다. 이처럼 ‘그래비티’는 삶의 근본적 조건을 파고든다. 우주라는 세계와 인간 내면에 피어나는 삶의 의지가 하나로 만나는 순간을 주목한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말하는 중력(gravity), 인간이 지구라는 삶의 무대에 발붙이게 하는 힘이다. 상영시간 91분. 12세 관람가.



장성란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강성률 광운대 교수):지금까지 본 영화 속 우주를 단숨에 허구로 만들어버린 테크놀로지. 단순한 상황으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화술.



★★★★☆(이은선 기자):끝도 없이 펼쳐진 공간에서 느끼는 극한의 고립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전의 모든 우주영화를 소품으로 떨어뜨렸다. 우주를 담은 영화는 ‘그래비티’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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