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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성난 고객 상대하느라 악몽 시달린다는 40대 직장 여성

중앙일보 2013.10.16 00:10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Q 민원 관리 업무를 책임진 40대 직장 여성입니다. 맡은 일이 민원 관리라 화난 고객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무시당했다며 노발대발하는 고객을 웃으며 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책임자라 남보다 더 노력하지만 화내는 고객은 늘어만 갑니다. 업무 때문에 쌓인 게 많아서인지 요즘 악몽을 반복해서 꿉니다. 어제는 주둥이가 긴 새한테 침을 뱉고 도망가는 꿈을 꿨습니다. 악몽 탓에 자고 나도 피곤하고 괴롭습니다. 악몽을 꾸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악몽도 힐링, 현실에선 좋은 사람이 치료제"

A ‘당신, 왜 나 무시해’라는 반응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나오는 분노입니다. 스스로의 존재감이 약하다고 느낄 때 나오는 반응이죠. 가장 대표적인 게 죽음입니다. 죽음은 내 정체성이 소멸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누가 내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겁니다. 두려움은 분노로 바뀝니다.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려고 죽을 힘을 다해 소리치는 겁니다. ‘왜 무시하느냐’는 고객 민원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라는 절규가 아닐까요.



요즘 ‘친절’이 고생입니다. 친절이란 원래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성입니다. 그런데 친절을 상품화해서 끼워 팔다 보니 친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고객은 열 받고 서비스 제공자는 울화병에 걸릴 지경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 여겨질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친절 서비스를 받으면 만족감이 커지는 이유죠.



문제는 ‘친절’이란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쑥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고객이 원하는 진심 어린 친절은 돈만 준다고 팍팍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과 마음의 반응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 감동받아야 진심이 담긴 친절을 베풀 수 있습니다.



기계적 친절이 싫다고 민원을 하는 고객이 많습니다. 인간이 기계처럼 자신을 낮춰 친절을 제공하는데 그게 싫다니요. 아마 진짜 친절을 달라는 거겠죠.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진짜 친절의 양은 그리 많지 않은데, 점점 친절을 끼워 파는 감성 마케팅이 범람하면서 친절에 대한 수요는 너무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짜 친절은 더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라는 믿음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사람의 가치를 사회경제적 가치와 동일시하는 속물적 사고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많으면 가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위가 높고 돈이 많으면 힘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 감성은 힘이 있는 사람을 향해 ‘진짜 친절’이 생기지 않습니다. 친절한 척할 수 있지만요. 마음이 가지 않는데 상업적 이유에서 친절을 베푸는 것, 심한 감성노동입니다.



고객에게 친절을 베풀자는 친절 마케팅의 동기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고객은 친절에 중독되고 직원은 감성노동 하느라 화가 쌓이다 보니 고객도 서비스 공급자도 힘든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고객은 친절 마케팅에 중독돼 자기가 사는 재화 자체보다 친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차를 살 때 차 성능이 좋으면 그만인데 판매 직원이 불친절하다며 차를 반품하겠다고 노발대발합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아 호전됐는데 원무 직원의 진료비 수납 태도가 성의 없다며 화를 내니 병이 덧날 지경입니다. 직원 입장에선 친절을 강요받아 웃지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닙니다. 견디기 어렵습니다.



돈으로 진짜 친절을 살 수 없습니다. 세련된 기계적 친절은 살 수 있지만요. 진짜 친절을 얻고자 한다면 방법은 한 가지, 나도 그 사람한테 친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들 너무 지쳤는지 친절하기는커녕 ‘왜 나 무시하느냐’는 민원만 합니다.



오늘 사연 주신 분도 그런 고객들한테 지칠 대로 지친 겁니다. 그러나 책임자라 의지로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상황이라 여겨지네요. 그러다 보니 현실이 아닌 꿈에서 화가 튀어나옵니다.



프로이트는 ‘꿈은 종종 미친 것처럼 보일 때 가장 의미가 깊다’며 꿈은 무의식과 현실 경험의 합작품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기괴한 꿈이나 악몽을 꾸면 혹시 해로운 게 아닌가 걱정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악몽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낮에 현실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꿈을 통해 해소하고 힐링하는 거지요.



주둥이가 긴 이상한 새는 민원을 내는 고객의 상징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새로 나오느냐고요. 아마 고객으로 나오면 죄책감을 느낄 수 있으니 꿈을 제작하는 무의식이 새라는 상징물로 대체하는 거겠지요. 이를 꿈작업(dream work)이라고 합니다. 꿈에서 아내와 데이트합니다. 깨고 보니 꿈 속에서 아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진짜 아내가 아닙니다. 다른 여성과 데이트하고 싶다는 욕망을 슬쩍 아내라는 이름으로 등장시켜 대리만족하게끔 하는 기교를 꿈작업이 부린 겁니다.



고객에게 침을 뱉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주둥이 긴 새한테 침 좀 뱉으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왜 도망쳤느냐고요. 침 실컷 뱉다 내 의식이 눈치챈 것입니다. 그 새가 고객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악몽은 이렇게 무의식이 작동하는 힐링입니다. 악몽을 꾸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현실 속에서 풀어야 합니다. 사람한테 속상한 일이 있다면 사람을 통해 힐링하는 게 좋습니다. 민원 업무에 지치다 보면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싫어질 수 있습니다. 심리적 회피 반응이죠. 이런 심리적 회피 반응을 극복하는 데 행동활성화 기법이 도움이 됩니다.



사연 주신 분에게 적당한 행동활성화 기법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겁니다. 속물적이지 않고 겸손한 사람 말입니다. 여기서 겸손한 사람이란 있어도 없는 척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을 평가할 때 스펙이 아닌 본질을 보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소탈한 사람이죠.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소탈한 사람을 볼 때가 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사회경제적 지위가 끼면 감정의 흐름엔 동맥경화가 생깁니다. 폼만 잡다 끝납니다. 친절을 파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 한두 명만 있어도 우리는 위로받고 힘내서 살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고요. 일단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는 훈련을 해보면 어떨까요.



맛은 좋지만 엄청 불친절한 ‘욕쟁이할머니’ 집에 가는 것도 좋습니다. 모든 사람을 공평히 무시하는 집에서 맛난 음식을 기분 좋게 먹고 나오는 거지요. 돈으로 꼭 친절까지 살 필요는 없지 않나, 맛있는 음식이면 그만이지 않나, 생각하면서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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