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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축구하며 노는 산골 학교 … 수능 성적 왜 이리 높을까요

중앙일보 2013.10.16 00:01 Week& 4면 지면보기
한일고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축구가 체력을 키우고 학습 능력을 올려준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기숙형 자율학교인 한일고는 매년 수능과 대학입시가 끝나면 언론에 등장한다. 우수한 수능 성적과 높은 대학 진학률 때문이다. 2013학년도 수능(언·수·외 표준점수 합계 평균)에선 전국 1800여 개 고교 중 20위를 했다. 청심국제고(27위), 하나고(28위), 서울과학고(40위)보다 높은 순위다. 대학합격률도 뛰어나다. 올해는 서울대 22명, 연세대 26명, 고려대 17명, KAIST에 16명이 합격(중복 합격)했다. 한일고의 이런 성과가 더 놀라운 건 주변에 학원 하나 없는 시골 학교라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학교 주변은 온통 산과 들뿐이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공부와 축구 말고는 할 게 없다”고 할 정도일까.

충남 공주 기숙형 자율학교 한일고



입학 100일제 행사 때 열린 반별 장기자랑
“이쪽으로 패스해.” 초록색 인조 잔디 운동장 위에서 각각 빨간색·파란색 유니폼을 나눠 입은 학생들이 축구공을 패스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1학년 김현일군이 찬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그대로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와~골인!!” 함성소리가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한일고 운동장은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이렇게 축구 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이곳에서 축구를 빼놓고는 학교생활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김군이 참여하고 있는 리그만 7개가 넘는다. 기숙사 호실별로 팀을 짜서 3~11월 진행하는 정규리그인 한일리그 외에도 1학년 2반, 동아리, 학생회, 체육부, 지역팀 등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김군만이 아니다. 전교생 90% 이상이 축구에 참여한다. 어떤 학생은 참여하는 팀이 많아 각기 다른 유니폼만 13종류를 갖고 있을 정도다.



(위부터) 한일고 전경.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말뚝박기를 하고 있다. 기숙사는 8명이 함께 사용한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에서 축구라니,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생들은 “축구의 장점이 ‘굉장히’ 많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장점은 체력이다. 김성한(2학년)군은 중학교 때까지 운동을 싫어해 몸무게가 80kg이 넘었다. 그때는 머리가 자주 아프고,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했다. 한일고 입학 뒤 당연히 적응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 학교에선 공부 외에는 축구밖에 할 게 없었다. 결국 축구를 하기 시작했고,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1년 동안 15㎏이 빠진 것은 물론 이제는 새벽까지 공부해도 피곤한 걸 모를 정도로 건강해졌다.



 땀 흘려 운동하면 수업 때 피곤해 혹시 졸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가 있다. 그러나 정반대다. 학생들은 오히려 집중이 잘 되고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입을 모은다. 임종혁(2학년)군은 축구를 하다 이를 다쳤는데도 다음날 또다시 운동장을 향했다. “새벽에 축구를 안 했더니 하루 종일 머리가 흐려졌다”는 이유였다. 이종현(2학년)군도 “슬럼프에 빠져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될 때 축구 한번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말했다. ‘명문대 진학 비결이 축구’라는 이 학교 학생 사이의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축구는 다른 학생과 어울리는 기회도 된다. 이군은 “몸담고 있는 팀이 많다 보니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며 “같은 방 쓰는 친구와 갈등이 생겨도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응어리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선 학원을 다닐 수 없으니 수업 집중도도 높다. 김성한군은 입학 초기 중학교 습관이 남아 있어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게 있어도 대충 넘어갔다. 하지만 한두 달 시간이 지나니 수업을 제대로 안 듣고는 내용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그 후로 교사의 농담까지 적어가며 수업에 집중했고, 모르는 게 있을 때는 학습멘토에게 물어봤다. 학습멘토는 같은 반, 같은 기숙사에서 국어·수학·과학 등 특정 과목에 우수한 실력을 가진 학생에게 주어지는 타이틀로 한 반에 많게는 5~6명 정도가 학습멘토로 활동한다. 또 10~20명의 학생이 학습동아리를 만들어 심화 학습을 하거나 서로를 가르친다. 바로 자주협력학습이다. 현재 국어·사회·토론·의학·과학 등 모두 50여 개의 학습동아리가 있다. 최용희 한일고 교감은 “멘토는 친구에게 가르치면서 한번 더 복습하고, 멘티는 같은 학년 친구에게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며 “학생들이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수업 후 자율학습 시간은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는 과정이다. 한일고 학생들은 오후 4~5시 정규수업이 끝나면 밤 12시까지 각자 교실에서 공부한다. 중학교 때까지 사교육에 의지하던 학생도 본격적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하는 거다. 혼자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학생은 초반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 김현일군도 처음 한두 달간 옆 자리 학생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만 불안했다. 괜히 국어 5분, 수학 5분 책을 뒤적이면서 시간을 낭비했다. 하지만 자율학습의 최대 장점, 그러니까 시간이 많다는 걸 활용했다. 중학교 때 공부 습관도 반성하고, 월단위·주단위·일단위로 계획을 바꿔가며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했다. 현일군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적은 게 문제라는 걸 깨달았고, 딴 생각을 하는 시간을 매일 스톱워치로 재면서 줄여 나갔다. 그는 “한일고에 오지 않았으면 아직도 내 공부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며 “전교생이 학습법 책을 한 권씩 만들어도 될 정도로 각자 독특한 공부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축구와 공부밖에 할 일이 없다고 하면 당장 휴대전화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게임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일고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쓸 수 없다. 휴대전화 소지를 아예 금지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도 제한적으로만 사용이 가능한 데다 컴퓨터 용량이 작아 문서 작성과 인터넷 검색만 할 수 있다. 당연히 학부모 만족도는 높다. 2학년 자녀를 둔 신정원(45·경기도 산본)씨는 “중·고생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대부분이 ‘게임과의 전쟁’을 치른다고 할 정도로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하다”며 “남학생 다니기에 한일고만큼 환경이 좋은 곳은 없다”고 말했다.



 학교는 인성교육도 강조한다. 관련 프로그램이 40여 가지가 넘는다. 대표적인 게 화랑교육이다. 한일고 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하면 ‘화랑바라기’라는 책자를 받는데 백제문화탐방, 한·중·일 해외문화교류, 태권도 교육, 입학 100일제 등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활동과 함께 내용을 기록할 수 있게 구성돼 있어 포트폴리오로 활용 가능하다. 또 화랑 7품제는 독서·영어 등 학생이 갖춰야 할 능력을 7개로 나눠 학교가 제시한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면 인증하는 제도다.



 기숙사를 8명이 함께 사용하는 것도 인성교육의 하나다. 최 교감은 “3년 동안 함께 생활하는 인원이 평균 21명”이라며 “2~4명이 한 방을 사용할 때보다 더 다양한 유형의 사람과 지내면서 이해의 폭을 넓힌다”고 설명했다. 매일 아침 점호 때 광장에 모여 “우리는 큰 그릇”을 세 번 외친 뒤 자신의 고향을 향해 목례한다. 모르는 선배에게도 인사를 해야 하는 등 선후배 간 예절도 깍듯하다. 신입생이 입학한 뒤 한두 달간은 선배가 후배 기숙사를 방문해 청결상태를 점검하고 군기를 잡는다. 변윤재(1학년)군은 “처음에는 선배들 행동이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었지만, 1년 정도 지내보니 학생들끼리 단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적응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재학생들이 말하는 우리 학교



"휴대전화 없이 어찌 사나 했는데 이젠 없는 게 더 편해요"



Q. 공기가 맑다.



A. 학교 주변이 산과 들뿐이다. 전에는 교복·교문·공해 없는 3무(無) 학교로 유명했다. 가끔 집에 가면 먼지 때문에 콧속이 답답하고, 기침이 난다는 사람이 많다. 학교가 자리 잡은 터도 명당이라고 한다. 아홉 정승이 나온다는 구작(九爵)골 전설이 전해져 온다.



Q. 공주에 있으니 충남 출신이 많겠다.



A. 전국에서 고르게 모인다. 올해 신입생 160명 중 충남을 제외하고는 경기도가 44명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20명, 충북 17명, 대전 8명 순이었다.



Q. 선후배 간 정이 끈끈하다고 들었다.



A. 그렇다. 특히 ‘침대 선배’가 각별하다. 신입생이 사용하는 침대를 전년에 쓴 사람이 침대선배다. 3월에는 침대선배들이 1학년을 위해 매점으로 깐풍기·피자 등 외부 음식을 배달시켜 준다. 얼굴도 모르는 선배가 사주는 음식을 먹으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침대선배와는 친형제 이상으로 친해지고, 학습 고민부터 인생 상담까지 다양한 도움을 받는다.



Q. 외부 음식 먹는 일이 많은가.



A. 종종 있다. 배달시켜 먹거나 일요일 자유시간을 이용해 외식한다. 차 타고 20~30분 나가면 식당이 있다. 식당에 전화해서 “한일고 학생 3명요” 하면 봉고차가 와서 데려간다. 짜장면·라볶이·치킨·피자 등을 하는 다양한 식당이 있다.



Q. 휴대전화를 정말 안 쓰나.



A. 그렇다. 매년 신입생 1~2명이 몰래 가지고 온다. 걸리면 바로 압수당하고, 부모님이 학교로 불려올 수도 있다. 대부분은 휴대전화 반입 금지를 알고 이 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중학교 때는 휴대전화 없이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이제는 다들 없는 게 편하다고 한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누구를 찾을 때 휴대전화 한 번이면 알 수 있는 걸 도서관·기숙사·운동장 등을 다 뒤져야 하기 때문이다.



Q. 부모와는 어떻게 연락하나.



A. 공중전화를 사용한다. 1학년 4대, 2학년 3대, 3학년 4대, 공용 4대 등 총 15대가 있다. 국내에서 공중전화가 가장 밀집돼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군대 온 것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군대처럼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라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Q. 이성교제를 하는 사람은 없나.



A.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학생 볼 기회도 없다. 축제 기간에 천안 지역 여고생들이 춤·노래 공연을 하러 오는데, 그때가 이성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이때 여자 친구가 생기는 사람도 몇 명 있는데, 한 달도 안 간다. 휴대전화가 없고 인터넷도 항상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연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이성교제를 하던 사람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얼마 안 돼 헤어진다.



신입생 이렇게 뽑아요

입학설명회 참석하고 상담받는 게 합격에 유리




“한일고 설립정신이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실천궁행(實踐窮行)입니다. 자신을 위해 지식과 어진 성품과 용기를 기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거라는 말입니다. 학생을 선발할 때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 평가합니다.”



 원윤정 한일고 입학담당관의 말이다. 한일고는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매학년 160명을 선발하는데, 이 중 110명이 전국 단위다. 나머지 46명은 충남지역, 4명은 사회통합전형이다. 1단계에서 중학교 내신성적을 포함한 학교생활기록부로 모집정원의 1.5배수를 추려내고, 2단계에서 서류평가와 면접을 치른다. 1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신 성적이다. 국·영·수·사·과 5과목을 반영한다. 1학년 20%, 2학년 30%, 3학년 1학기 50%로 학년별 반영 비율이 다르다. 또 영어·수학은 30% 가중치를 더 둔다. 교과 성적 외에 출결상황, 창의적 체험활동, 봉사활동 등을 평가하는데 학교 학생회장·부회장, 학급·동아리 임원 등을 했거나 효행상·선행상 등 수상경력이 있으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원 교사는 “합격생의 중학교 평균 내신은 상위 3.5% 내외”라며 “하지만 1.5%가 떨어지고, 8%가 붙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기개발계획서를 포함한 서류평가와 면접에서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자기개발계획서는 지원 동기 및 진로, 자기주도학습 과정, 독서활동, 봉사·인성, 체험활동 등으로 나누는데 영역별로 학생마다 점수 차가 크다. 예컨대 독서활동 만점이 5점이라면 A학생은 만점을 주고, B학생은 1점만 주는 식이다. 한 영역이라도 소홀히 준비하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자기개발계획서는 한눈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작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원동기를 쓸 때 ‘한일고에 진학한 중학교 선배 때문에 한일고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꼭 진학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식으로 작성하면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지원탐색 시기, 지원결정 시기, 지원결정 요소, 지원노력과 성취결과 등으로 소제목을 달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야 한다. 또 ‘영어 성적 우수’ 등의 추상적인 표현보다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 영어 단어 1000개를 익힘’처럼 구체적인 게 좋다. 독서활동 영역에서는 독서활동의 우수성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 2권을 선정해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해야 하는데, 읽은 책 총량과 분야, 독서 습관 등을 쓰는 게 중요하다. 면접은 서류평가의 진정성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자기개발계획서 각 영역별로 나눠 진행한다. 학생은 한 영역당 3명의 면접관을 만나고, 3분 정도 질의·응답한다.



원윤정 입학담당관
 여기까지는 다른 고등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입학 지원서를 넣기 전이다. 한일고에는 비공식적으로 단계별 입학 전형이 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설명회에 참석한 뒤 입학담당교사와 집단상담·개별상담·특별상담 등을 진행하는거다. 학생과 학부모는 이를 통해 학교 생활에 대해 알고, 학교에 진학한 뒤 잘 적응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이 과정이 합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아도 이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사실상 합격하기 어렵다. 이 과정을 자기개발계획서 지원동기에 써야 하고, 자기개발계획서 작성 요령 등 합격에 도움이 되는 진학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원 교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4년 연속 설명회에 참여해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이 뭔지 충분히 파악한 학생이 중3 때 갑자기 학교에 진학할 마음을 먹은 사람보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한일고는 후기 일반고라 외고나 과고에 떨어진 뒤 지원 가능하지만 그렇게 합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일고가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만들어 뽑는다는 얘기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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