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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싱가포르의 온화한 엘리트주의

중앙일보 2013.10.14 00:58 종합 29면 지면보기
대니얼 벨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左), 리천양 난양이공대 교수(右)
20여 년 전 싱가포르 정치지도자들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이 지역에 맞지 않는다며 ‘아시아적인 가치’를 제시했다. 이는 인권의 보편성에 어긋난다는 논란을 불렀다. 싱가포르의 지도자들은 또 다른 혁신적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현대 정치 시스템을 엘리트주의에 입각해 운영해야 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정치에서 엘리트주의란 실력이나 미덕을 바탕으로 지도자를 뽑는 시스템으로, 중국과 서구 모두에서 주요 정치 이론으로 다뤘다. 공자부터 플라톤, 제임스 매디슨(대의제 강조), 존 스튜어트 밀(공리주의 강조)까지 많은 정치학자는 폭넓은 분야에 걸쳐 현명하면서도 명석한 판단력을 갖춘 지도자를 뽑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보편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20세기 이후 관심에서 밀려났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자신들의 손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후보 됨됨이 판단은 전적으로 유권자 몫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선 엘리트주의가 여전히 핵심이었다. 지도자들은 민주 절차를 제약하긴 했지만 국민을 이끌 최고 자질을 갖춘 인물을 고르는 데 초점을 맞춘 이 제도를 옹호해 왔다.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이를 “군자가 국정을 맡아 국민을 위해 책임지고 좋은 일을 하며 대중의 신임과 존중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65년 독립 이후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룸으로써 대중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새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급격히 떨어졌으며 그 결과 정부는 국민 입장을 더 많이 살피고 있다. 이제 싱가포르 지도자들은 더 많은 평등과 더 폭넓은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인식해 정치 발언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고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중단했다. 소득 불균형을 줄이고 계층 상승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중산층을 위한 사회보장도 늘렸다. 교육·의료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병행했다. 이러한 새로운 방침을 ‘온화한 엘리트주의’라고 부른다.



  90년대 이후 중국은 수천 명의 관리를 보내 경험을 배워 갔다. 중국은 싱가포르 사례에 따라 수십 년간의 훈련과 일련의 시험 과정을 거쳐 관리들 가운데 정치 지도자를 선발해 길러내는 복잡하고 포괄적인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선발한 지도자들은 경제 발전을 이룩해 수억 인민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부패·불평등·환경파괴·부정부패, 그리고 정치적 이견이나 종교적 표현에 대한 억압은 더욱 악화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권력 남용 견제와 민주적 개혁이 필요하다. 엘리트주의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도 있다. 관리는 정치적 충성·부·집안 배경보다 능력과 도덕성에 기초해 선발하고 승진시켜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 감소와 주민 배려도 보상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싱가포르의 온화한 엘리트주의는 중국에 유용한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을 서구 자유민주주의적 기준으로만 재단할 순 없다. 중국 정치 전통에서 주요 역할을 해온 엘리트정치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의 하나로 작용한 것이 거의 분명하다. 90년대 초 중국 경제가 20년 안에 세계에서 둘째로 크게 되리라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 20년 뒤엔 중국 스타일의 엘리트정치가 서구 스타일의 민주주의에 대안을 제시하고, 심지어 도전하기까지 했는지를 논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Project Syndicate



대니얼 벨 싱가포르국립대 초빙교수

리 천 양 난양이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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