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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누구와도 다른그저 힘든 일상에 직면한이 시대 예술가일 뿐

중앙선데이 2013.10.05 12:27 343호 16면 지면보기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한 바젤리츠.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개인전이 9월 8일 파리 팡탕 갤러리에서 개막됐다. 5000㎡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도 올해 일흔다섯의 바젤리츠에게는 그저 하나의 작은 캔버스에 불과했던 것일까. 높이가 3m에 달하는 캔버스 작업들과 3m 50cm가 넘는 조각 작품들로 이루어진 전시장을 둘러보며 노년의 나이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타오르는 창작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독일 신표현주의 회화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를 만나다

‘거꾸로 그리는 그림’으로 유명해진 바젤리츠는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우리에게도 알려졌다. 그림을 거꾸로 그리며 그는 기존 회화의 전통과 예술에 대한 고정 관념으로부터 벗어나 표현의 자유를 세상에 외친다. “나는 무형의 것들을 회화로 표현하는 꿈을 꾸어 왔다”고 말했듯 그에게 창작이란 예술의 미지의 영역에 다다르기 위한 스스로와의 투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거친 붓놀림으로 캔버스를 거의 적막에 가까운 검은색으로 채운 회화와 사납게 베고 거칠게 깎아낸 나무토막을 브론즈로 구현한 조각을 대규모로 선보였다. 대형 조각들 표면에 상처처럼 그어진 거친 선들은 작가가 목도하고 겪어 온 독일의 역사와 파란만장한 세월의 흔적이었다.

1 Neimandsland(2013), Oil canvas, 300x450cm ⓒJochen Littkmann
2 Marokkaner(2013), Bronze, 351㎏, 169x103x75cm ⓒJochen Littkmann
-이번 전시에서 주요 작품처럼 느껴지는 BDM(Bund Deutcher Madel·14세에서 18세 소녀들이 가입했던 나치 독일의 젊은 여성 연맹) 조각이 궁금합니다. 팔짱 낀 모습으로 표현된 소녀들 간의 유대감이 나치 독일을 돌이켜보는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나 스스로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전적인 작품입니다. 여섯 살이었을 때 내 고향 삭소니의 도이치바젤리츠 광장을 멋진 유니폼 차림으로 팔짱 끼고 걸어가는 소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인상 깊은 경험이었어요. BDM과 관련한 제 경험이 ‘나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저 사실일 뿐입니다.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함부로 평가하기에는 무척 민감한 사안입니다. 당시 두 개 독일의 관계, 그리고 독일 정치 상황의 상관관계에는 이데올로기와 철학과 교육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통해 정해진 구조와 시스템이었고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제될 것이 없었지요. 하지만 결국 잘못되었죠. 일이 틀어졌습니다. 아주 심하게요.”

-당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바젤리츠의 작품에서 무조건 독일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읽으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닙니다. 제 작품은 정말 시대에 입각한 예술적 표현입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경험은 그저 경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경험이 다 좋을 수는 없죠. 하지만 어떠한 경험이라는 것은 매우 강렬합니다. 나쁘기 때문에 더 강렬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죠.”

-미술은 항상 역사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미술이 정치를 말해야만 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죠. 한국 사람이라고 하셨죠? 현재 한국은 과거의 독일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독일에 동쪽의 그림과 서쪽의 그림이 있었듯 한국에는 남쪽의 그림과 북쪽의 그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쪽에서 회화를 표현하는 방식은 지극히 국가 사회주의적인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옳다고 생각하세요? 독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잭슨 폴록 같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동독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퇴학을 당했습니다. 제 그림에 정치적 요소가 없고 성숙하지 못했다는 이유로요. 저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제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고 이를 강요당하는 것을 예술가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 제게 학교를 떠나라고 했죠. 그 후 서독으로 갔고(당시에는 벽이 없었습니다) 추상미술을 접했습니다. 담당 교수님도 추상 미술을 하는 작가였죠.
그러다가 1958년 오늘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전시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 1층 전체에 걸쳐 잭슨 폴록의 그림들이 전시됐습니다. 다음 층에는 당시 미국 화단을 대표하던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을 볼 수 있었죠. 모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걸작들이었습니다. 그게 스무 살 때였어요. 그전까지 제가 가진 미국에 대한 이미지라고는 그들이 만든 초콜릿, 그들이 운전하던 탱크가 전부였어요. 미국은 그저 문화도 없고 전쟁만 할 줄 아는 미개한 국가라고만 생각했었죠. 히틀러를 비롯한 제 교수님들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작품 앞에서 ‘아 앞으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만 할까?’ 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예전에 해 온 것들을 모두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내 이미지, 내 삶 속에서 내 과거의 유적 속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요?
“모두 다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근법은 나쁘다. 나는 돼지우리 같은 그림을 그리겠다. 나는 엉망으로 그리겠다. 못 그린 그림을 그리겠다. 나쁜 재료로, 나쁜 주제로, 나쁜 그림을 그리겠다. 이런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길을 걸어가고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사람들은 저를 몹시 절박한 상황에 이른 작가로만 봤습니다. 제 교수님조차 ‘누군가가 이미 저지른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힘든 일상에 직면한 이 시대의 한 예술가일 뿐 과거의 그 누구와도 달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힘든 일상은 예술가에게 좋은 것입니다.”

개인전이 열리는 파리 팡탕 갤러리 전시장. 3 Yellow Song(2013), Bronze, 780㎏, 310.2x149x108.5cm 4 DM Gruppe(2012) Bronze, 1837㎏, 366x242x149cm ⓒJochen Littkmann
-그림을 거꾸로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60년대 초반 사람들은 제 그림을 경멸했습니다. 무언가 지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69년쯤 막다른 곳에 다다랐습니다. 배 속에서 모든 것을 다 끄집어내고 뱉어낸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불현듯 지식인이 되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상적인 예술가의 범주 안에서 이해되지 못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은 당시의 전통이나 관례를 벗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학 교수들이 ‘그림은 현실과 비교가능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저는 거슬렀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저는 이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예술이 가진 규율이 아닙니다.
현실을 표현하는 데 있어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19세기 독일 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Anselm Feuerbach)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자연 스케치는 멋집니다. 하지만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린 큰 스케일의 작품은 정말 형편없습니다. 19세기에 그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이었죠. 저는 그림을 그리되 완성된 후에도 안젤름 포이어바흐의 스케치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모두가 알아볼 만한 요소가 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그렸죠.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페인트가 위로 흐릅니다’라고 반박할 수 없게끔 아예 처음부터 그림을 돌려놓고 거꾸로 그린 겁니다. 처음 거꾸로 된 그림을 걸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게 무슨 농담이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저 돌려놓기만 하고 아방가르드를 자처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난 그저 평범한 그림을 거꾸로 그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웃음)”

-‘보이지 않는(Invisible)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지요.
“화가로서 저는 이 문제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게 그릴 수 있는지, 왜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 무언가를 꼭 보여줘야만 하는지, 이 불편한 운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고 어떻게 해답을 찾을지 많이 고민해 왔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저는 아무도 못 보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벽 쪽을 보고 거꾸로 걸려 있는 그림처럼. 그림은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눈에 들어오는 시각 이미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조셉 보이스의 설치 작품을 생각해 보세요. 그림들을 모두 벽 쪽을 향하게 걸어놓고 아무도 돌려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그림입니다.”

-이번 전시에도 독수리가 등장하는데 왜 독수리 색이 검은색에 가깝도록 어두운가요.
“1962년 한 중요한 작품에 독수리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계속 같은 형태와 같은 형식을 재구성하고 다시 사용해 왔습니다. 매번 독수리를 그렸지만 그 당시의 기법과 스타일로 새롭게 재탄생시켰습니다. 그리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주제는 그대로였던 거죠. 이러한 실험적인 작업을 계속 해나가면서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자, 이제 뭘 할 것인가. 숲에 들어가서 밤이 되길 기다리고 점점 더 밤이 깊어지길 기다릴까. 저는 그저 어둡게 섞은 물감을 가지고 항상 그래왔듯 독수리를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이것 또한 일부러 좋지 않은 그림을 그려보고자 시작한 실험이었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보편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을 몽땅 배제한 채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이게 그 결과입니다. 그렇게 훌륭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성공적인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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