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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이 만능은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3.10.05 12:32 343호 21면 지면보기
언제부터인가 예능 프로그램들이 만능이 되어가고 있다. 연예인을 험한 정글에 던져놓거나 국가대표급 선수로 변신시키는가 하면 다녀온 군대를 다시 가게도 한다. 고민을 듣고 마음을 고쳐준다는 ‘힐링’이라는 타이틀까지 내건다.

컬처#: ‘송포유’ 논란

오래전부터 예능의 위력은 컸다. 예쁜 집을 뚝딱 만들어주고 앞 못 보는 사람들의 눈을 밝혀주기도 했다. 재능은 있으나 기회가 없던 사람들을 대스타로 만들어 꿈을 이뤄주기도 했다. 예능은 참 많은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능의 예능 뒤에는 부작용이 있다. 흔히 ‘정글’로 비유되는 예능의 경쟁적 환경은 눈을 끌기 위해 무엇이라도 감수해야 하며, 그래서 교양이나 시사 다큐와는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다이빙을 하던 연예인, 군대에서 훈련하던 연예인들이 속속 부상을 당한다.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고질병 때문이다.

연예인이 겪는 예능 부작용은 ‘프로’ 정신으로 극복한다고 치자. 배려 없이 자극과 무책임한 변화에 노출되는 일반인은 좀 더 걱정스러워 보인다. ‘안녕하세요’나 ‘화성인 바이러스’에서는 가끔 웃고 넘기기 힘든 범죄나 정신적 질병 급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의 도움이나 자제를 권유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극적이고 기괴할수록 상금이 주어진다.

추석특집으로 방영된 ‘송포유’ 논란을 보자. 이 프로그램의 의도와 진심은 비난할 만한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 과거를 가진 아이들을 단지 가해자가 아니라 소외받은 처지로 보고 그들에게 음악이라는 치료제와 합창이라는 협동과 규율의 중요함을 주는 것, 소중한 추억을 통해 변화의 기회를 주는 것. 다 좋은 의도다. 의도대로 아이들은 100일 만에 화음을 만들고 성취의 기쁨으로 추억을 얻었다. 기대했던 눈물도 쏟았다. 의도는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예능이라는 정글로 들어왔을 때 그 진심들은 지켜지기 쉽지 않다. 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주인공이었을까. ‘예능’적으로 봤을 때 피해자들이 노래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뻔하고 순하고 ‘교양’적이고 ‘다큐’적이라 배제되었을지도 모른다. 예능에서 그토록 중요하다는 ‘캐릭터’나 ‘성장 스토리텔링’의 컨셉트로 보면 어두운 과거를 가진 아이들이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며, 여린 아이들보다는 폭력의 주인공들의 변화가 훨씬 극적인 스토리다. 일종의 교육과정이 포함된 이 프로에서는 교육전문가나 선생님들과 상의하며 교육적인 접근이 있었던 걸까.

아이들을 보자마자 “담배 피우는 사람 손들어 봐” 하는 질문에 이런 건 없어 보였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이 프로를 통해 받을 2차 피해는 차치하고라도, 학교와 아이들에게도 상처가 됐을 여지가 많다. 두 학교는 커다란 자막으로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종착역’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을 땅에 묻었다는 끔찍한 기억도 우스꽝스러운 대문짝만 한 자막으로 희화화됐다. 어쩌면 학교를 소중하게 여기며 다닐 다른 학생들에게는 선택권 없는 낙인이 찍혔다.

소수의 아이들이 추억을 만든 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간절히 바라지도 않던 합창을 대한민국 최고 가수에게 배우고, 방송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고, 보통사람들은 가기 힘든 곳으로 여행을 가는, 평생에 한 번 가지기 힘든 기회를 가지는 것은 과연 이들의 인생에 좋은 자극만 되는 것일까. 혹시 이런 특별한 기회와 특별한 시간에 받았던 지나치게 비일상적이고 호화로운 추억들이 헛된 공명심과 다시 마주쳐야 할 초라한 일상에 짜증을 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마저 생긴다.

집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는 예능은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석 달 동안 특급호텔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주는 예능이 있다면 주인공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고 해도 시청자들이 문제가 해결됐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예능 프로가 100일 만에 변화시키고 눈물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학교폭력의 문제는 너무 뿌리가 깊고 걷어내기 힘든 아픔과 상처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문제에는 서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예능의 도전정신과 동원력과 파급력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예능 프로들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능은 만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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