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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통에선 갓 구운 건빵 냄새가 난다네

중앙선데이 2013.10.05 12:38 343호 23면 지면보기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건빵 공장이 있었다. 굴뚝에서는 거의 매일 흰 연기와 더불어 구수한 건빵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교가 끝나면 건빵 공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공장을 둘러싼 거대한 흰 벽 주위를 서성거리며 건빵 실은 차라도 나오는지 기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흰 벽 어딘가에서 유난히 강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찾아본 결과 조그만 틈새를 발견했다. 그곳으로 공장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흰 가운을 입은 아줌마들이 양옆으로 서서 벨트 위로 구워져 나오는 건빵을 한곳에 모으고 있었다.

김혁의 와인야담 <1> 공장 건빵의 추억

건빵 공장 내부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무리 친구들이 그 틈새 앞에서 모여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중 일부는 입 속에 건빵을 넣고 맛있게 오물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틈새에 불과했던 구멍이 손 하나 들어갈 정도로 넓혀져 있었고 아이들은 그 속으로 손을 들이밀고 있었다.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그 손 위에 건빵 몇 개를 올려주고 계셨던 것이다.

필자도 흰 벽 안으로 손을 넣고 기다려 보았다. 잠시 후 몇 개인지 알 수 없었지만 따스한 무언가가 마술처럼 손 위에 올려졌다. 우리는 이제 매일같이 건빵을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얼마 동안 이 기대는 실현되고 있었다. 이 작은 구멍이 재미있는 것은 손을 펴서 집어넣어야 하고 손을 핀 채로 빼야 한다. 만약 건빵을 얻는 동시에 주먹을 쥐고 빼려 하면 영락없이 주먹이 구멍에 끼여버렸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고 싶은 사람이 아무리 많이 줘도 고사리 손 위에 올려져 그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건빵 수는 서너 개에 불과했다. 그래서 건빵을 좀 더 많이 움켜쥐고 손을 빼지 못해 엉엉 우는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그 건빵 공장은 우리에게 오후의 달콤한 희망이 됐다. 흰 벽 사이로 건빵을 건네주는 요술 구멍의 힘은 대단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보다 더 많은 아이가 요술 구멍 앞에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건빵을 오물거리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으로 더 이상 구수한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다가가 보니 아뿔싸! 요술 구멍이 막혀 있었다. 우리의 희망이 아주 막혀버린 것이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일전에 작은 틈새로 보였던 그 완장 찬 무서운 아저씨의 소행일 것이라 짐작했고 어떤 아이는 확신했다. 어린 시절 구수한 건빵 냄새는 어린 날의 꿈처럼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어렸을 적 그 구수했던 희망의 향기를 와인에서 찾았다. 와인을 숙성하는 오크 통은 만드는 과정에서 통 안쪽을 불로 그을리는데 정도는 아주 약한 단계에서 강한 단계까지 다양하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성향이나 포도가 자란 환경에 따라 강약을 조절함으로써 맛과 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와인에서는 과하지 않은 오크 향이 나며 와인 향과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맛을 전달한다. 서양인들은 오크를 그을려 나는 향을 토스트 향이라 하지만 필자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구수한 건빵 향기로 느껴진다.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이면 한 잔의 구수한 레드 와인을 마시며 40년도 더 지난 추억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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