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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막장 드라마’ 절세미녀들 왜 희대의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나

중앙선데이 2013.10.05 12:48 343호 26면 지면보기
저자: 천젠화, 리스야 역자: 심규호 출판사: 중앙북스 가격: 2만원
요즘 장안에 떠들썩한 지퍼게이트 보도를 접하며 슬며시 드는 생각.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 애 엄마는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혹자가 ‘전설 속 영웅’이라고까지 치켜세우는 점잖은 한 남자의 인생에 재앙을 몰고 온 걸까. 중요한 나랏일을 하던 남자고, 온 나라를 혼란에 빠트렸으니 좀 과장해 ‘경국지색’이라도 갖춘 셈인가.

『홍안화수』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 MC로 지목됐다 여론에 밀려 취소됐다는 신모씨도 비슷한 경우. 몇 해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 여인의 사기행각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그녀에게 권력 실세였던 남성이 순정을 바쳤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권력을 갖고 놀다 한순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그녀들의 마력, 그 실체가 짐짓 궁금해진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들의 사적인 입방아에서 해당 남성들은 동정표를 사고 여인들만 ‘망할 ×’으로 오르내리고 있을 것이다. 자고로 사태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는 남자들의 비겁함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홍안화수(紅顔禍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뛰어난 미색을 지닌 여인이 나라에 재앙을 끼치는 근원이 된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이 지닌 살상력을 경고하는 말로, 무고한 남자가 어쩌다 여색에 빠져 망하게 됐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 거대한 중국의 역사 속, 흥망성쇠의 한복판에 반드시 등장하는 그녀들의 맨얼굴이 있다. 권력을 그르치고 나라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된 ‘홍안화수’들. 고작 여자 때문에 나라간, 부자간, 형제간에 피를 튀겼던 블록버스터 막장드라마 15편에 절세미녀들이 희대의 악녀로 변해간 사연들이 흥미진진하다.

역사에 갇힌 희생양, 문학에 의한 왜곡 등 저자들은 홍안을 5유형으로 분류하지만, 결국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 외적 요인에 의해 악녀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으며 과연 진짜 악녀인지조차 확인할 길 없다는 공통된 결론으로 수렴된다. 중요한 것은 그녀들을 기록한 역사와 소설의 서사 주체가 남성이었기에 철저히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비춰져 왔다는 점. 비방과 모욕의 관점은 여인을 두려워하는 남성의 유약한 심리에서, 동정의 관점은 미녀에 대한 남성의 갈구에서 각각 비롯됐다는 것이다.

중국사에 기록된 첫 번째 망국의 요후(妖后)라는 ‘원조 홍안화수’ 말희(末喜)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하(夏)왕조를 멸망으로 이끈 그녀도 원래는 지극한 효심 때문에 후궁으로 들어가 명석한 두뇌와 탁월한 식견으로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된 것이 화의 근원이 됐다. 주변의 질투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점차 악녀가 되어 결국 왕조 멸망의 원흉으로 비난받기에 이르렀지만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어찌 그녀의 죄란 말인가?’ 그저 수동적인 입장에서 권력에 대응한 그녀를 비난하는 남성중심적 시각이 근본부터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정사와 야화를 비교, 고증하며 그녀들이 ‘홍안화수’로 왜곡된 과정을 역탐색한 결론은 홍안을 화수로 만든 것은 서사의 주체인 남자들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남자들의 감정과 욕망이 정치와 권력, 윤리와 합쳐진 산물이라는 것.

결국 그녀들이 진짜 악녀인지 아닌지를 재단할 잣대는 없다. 하지만 ‘홍안화수’가 모조리 수동적인 피해자였고 남자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단정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 이제 당당히 서사의 주체가 된 여자들이 홍안들을 재해석할 때가 왔다. 악녀로만 알던 장희빈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한 드라마가 얼마 전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하다. 악녀인지는 모르겠으나 매력녀였음은 분명한 여인들의 이야기. 어리석은 남자들을 맘껏 갖고 놀았거나 혹은 진심으로 사랑했거나, 주체적인 스토리텔링 속에서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될 그녀들의 매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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