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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손님들 다이어트도 잊고 갈비찜 접시 싹~

중앙선데이 2013.10.05 18:01
피렌체 사뇨리나 광장에 위치한 구찌 뮤제오 건물 전경.
지난달 17일 오후 6시(현지시간) 이탈리아 피렌체 사뇨리나 광장 앞 구찌 뮤제오(박물관). 어깨가 드러난 청록색 원피스를 입은 동양 여인이 등장하자 스무 명 남짓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상기된 표정의 그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손님들을 맞았다. 리셉션장인 테라스를 돌며 “와주셔서 감사하다” “오늘 저녁을 편안하게 즐겨 달라”는 인사말로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씩 털어 냈다. 배우 이영애였다.

구찌와 함께 피렌체에서 한식 선보인 ‘대장금’ 이영애

워낙 신비로운 이미지인 데다 결혼 뒤엔 거의 공식활동을 하지 않던 그가 왜 한국도 아닌 피렌체에 모습을 드러낸 걸까. 이유는 특별했다. 바로 세계적 관광도시이면서도 한식당이 전무한 피렌체에 한식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그리고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와 함께 현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초대하는 한식 만찬의 주최자로 나섰다. 마치 드라마 ‘대장금(2003)’ 속 장금이가 시공간을 뛰어넘고 현실로 튀어나와 한식 전도사가 된 셈이다.

프로젝트가 기획된 건 지난 4월. 구찌가 후원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나의사랑 문화유산 캠페인’ 홍보대사로 이씨가 나섰고, 이씨 역시 ‘대장금’으로서 한식 알리기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양측의 뜻이 통했다. 때마침 이씨는 드라마 방영 10주년을 맞아 한식 관련 다큐를 촬영 중이기도 했다. 이번 만찬 역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SBS 스페셜 설날특집 2부작 ‘이영애의 만찬’을 통해 내년 초 방영될 예정이다.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한국 전통 문화의 아이콘이 된 그가 소개하는 한국의 음식은 어떤 것일까. 리셉션이 끝나고 손님들은 기대감 속에 테이블에 앉았다. 광장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면서 행사장엔 국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만찬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뮤제오 카페에 마련된 만찬장. 피렌체 문화·예술계 인사와 배재현 주이탈리아 한국 대사 등 26명이 참석했다.
피렌체 문화예술계 인사 20여 명 초대
뮤제오 내 카페 만찬장. 공동 주최자인 이씨와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 구찌 CEO를 중심으로 손님들이 기다란 사각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이날 초대된 이들은 24명. 크리스티나 아치디니 바르젤로 국립박물관 디렉터, 제임스 브래드버른 팔라초 스트로지 재단(피렌체 최대 전시공간) 디렉터, 토마소 멜라니 스콜라 델 쿼이오(가죽예술학교) CEO, 크리스티나 스칼레티 토스카나 지역의원, 라파엘로 네폴레오네 피티 이마지네(이탈리아 패션박람회) CEO 등 피렌체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이었다. 여기에 뜻깊은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배재현 주 이탈리아 한국 대사 부부, 구찌 이사진이 함께했다.
디 마르코 CEO가 먼저 환영사를 건넸다. “요리는 문화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이번 만찬은 의미가 깊습니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맛을 즐기기 바랍니다.” 옆에 앉은 이씨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보나세라, 뚜띠, 피아체레(Bouna Sera, Tutti, Piacere: 안녕하셔요 여러분. 반갑습니다.)”라는 간단한 이탈리아어로 말문을 연 그는 한국인에게 있어 ‘밥’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국인은 밥으로 마음을 교류하고 정을 나눕니다. (저는) 한국인의 맛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알리려고 오랫동안 고심하며 노력해 왔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양국이 가까워지고 이해하게 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그라치에 밀레(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두 사람의 말에 화답하듯 배 대사가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 협력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며 축사를 마무리하자 모두가 테이블에 놓인 놋잔을 들었다. 자색고구마 막걸리가 들어 있었다. 서로 잔을 부딪치는 묵직한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면서 본격적인 한식 디너가 시작됐다.



만찬 전 테이블 세팅 모습. 메뉴 설명과 함께 전통매듭이 달린 냅킨을 준비했다.


미리 공부한 메뉴 설명 속사포로 이어져
만찬은 모두 다섯 가지 코스로 이뤄졌다. 먼저 아뮤즈 부쉬로 나온 건 말린 과일과 채소. 나무판 위에 연근·단호박·대추 등을 얇게 저며 건조시킨 먹거리였다. 여기에 식감의 대비를 이룰 만한 인삼 무스가 곁들여졌다. 인삼 향이 나지만 굉장히 부드러운 데다 뒷맛엔 살짝 크림에 가까운 달달함도 느껴졌다.
손님들 대다수가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조심스럽게 숟가락질만 반복했다. 뭐라 섣불리 평하기가 어려운 듯싶었다. 기자가 “한국인에게도 낯선 메뉴”라는 말로 침묵을 깨자 스테파니아 일포리티 토스카나 영화협회 디렉터는 “처음 한식을 먹는 나와 한국인인 당신의 표정이 똑같다”며 웃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만찬 대화는 한식과 한국 문화에 관한 것으로 이어졌다. 다들 한국과의 인연을 한 자락씩 꺼내 들었다. 한국인 부인을 둔 리카르도 젤리 피렌체 코리아 필름 페스티벌 디렉터는 “한국 가면 신라면도 먹고 짬뽕도 먹는다”며 고수급 경험을 털어놨고, 구찌 슈즈 담당 이사인 마시모 리구치는 “한국에 세 번쯤 갔는데 부산에서 갓 잡아 뜬 회가 기가 막혔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그 사이 본격적인 상차림이 시작됐다. 놋그릇에 담긴 서리태 죽과 양배추 깻잎 김치에 이어 잣즙을 곁들여 만든 왕새우 무침, 수삼 편육 냉채, 감자와 단호박 뿌리 범벅이 한 입 크기 모양으로 한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세 번째 메뉴는 매운 닭갈비 꼬치 산적과 녹두전, 월과채로 구성됐다. 손님들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매우 아름답다. 디테일이 남다르다”는 말을 연발했다. 특히 간장을 발라 먹도록 채소 잎을 잘라 붓처럼 묶어 둔 것을 보고는 모두가 한마디씩 감탄사를 날렸다.
한식에 대한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높자 이씨는 기다렸다는 듯 메뉴 설명을 시작했다. 수프와 죽이 어떻게 다른지, 전·산적·전병 등이 어떤 음식인지를 연이어 말했다. 대장금을 촬영하며 궁중요리까지 직접 배운 이씨는 만찬을 앞두고 메뉴 하나하나를 영어로 번역해 공부했다고 했다.

어느새 만찬의 하이라이트. 갈비찜과 연잎밥, 여기에 고추장 더덕장아찌, 배추김치, 매실간장장아찌 등이 밑반찬으로 등장했다. 구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이사인 클라우디아 코즈마 카플란은 더덕장아찌를 먹어보고 “한식의 매운맛 중 최강도냐 중간급이냐”라며 궁금해했다. 얼굴이 이내 벌게졌지만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김치 먹기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한식을 즐기다가는 와인이 늘겠다”는 너스레를 떨어 좌중을 웃겼다.
어느덧 오후 9시가 지나고 오미자화채와 쌀강정이 디저트로 나오자 만찬 분위기가 서서히 정리돼 갔다. ‘아름다운 음식’ ‘건강한 음식’이라는 한식에 대한 호평과 함께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작별 인사가 오갔다. 그 가운데 팔라초 스트로치 재단에서 모던 예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리카르도 라미는 이탈리아에서 한식에 대한 발전 가능성을 피력했다.
“지금껏 피렌체에 한식당이 없다는 건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강한 자부심 때문일 수도 있다. 피렌체 사람들은 어디 여행 가서도 꼭 피자를 먹는 정도니까.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음식이란 단지 맛이 아니라 문화다. 사람들은 어떻게 먹느냐, 혹은 어떤 프레젠테이션으로 나오느냐를 흥미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런 점에서 오늘 한식은 매력적인 문화임에 분명했다.”

우송대 글로벌한식조리학과팀 5개 코스메뉴 준비
이날 만찬 음식은 우송대 글로벌한식조리학과 교수 2명과 학생 5명이 담당했다. 이 학과는 정부로부터 국내 최초 한식조리 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들은 특별한 행사이니만큼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들로 구성된 다섯 가지 코스 메뉴를 준비했다. 김혜영 교수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 세 가지 육류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한식을 선보이면서 인삼 같은 우리만의 식재를 녹여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또 파인 다이닝이니만큼 한국의 전통 식기도 소개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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