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정설 돌면 결국 자리 꿰차 … 임원추천위 거수기 논란

중앙선데이 2013.10.05 23:52 343호 4면 지면보기
한국거래소 노조가 “최경수 이사장 선임 과정이 부적절했다”며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로비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스1]
#4일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한국공항공사 신임 사장에 내정됐다. 공사 안팎에선 “역시나 내정설이 맞았다”는 말이 나왔다. 공사 노조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말부터 김 전 청장을 두고 “청와대가 낙점했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처럼 공모 절차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내정설이 떠돈 끝에 임명된 인사는 김 전 청장 외에도 4명이 더 있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다.

9월 초부터 재개된 공공기관장 인사 해부

#친박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이규택 전 의원은 지난달 30일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교육부 관료가 아닌 정치인 출신이 이사장이 된 건 공제회 43년 역사상 처음이다. 공제회 노조 간부 김모씨는 “보통 임원추천위원회가 두 달 전부터 열려야 하는데 이번엔 20일 만에 진행됐고, 물망에 올랐던 이들도 막판에 응모하지 않아 사전 정지 작업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사람에 대한 보은 인사”라고 주장했다.

이 전 의원 외에도 최근 임명된 기관장 중엔 박 대통령이나 여권 인사와 인연이 있는 이들이 많다. 최연혜(전 새누리당 당협위원장) 한국철도공사 사장, 손범규(전 의원)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박보환(전 의원)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박영아(전 의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등이다.

특정 후보 미는 여권 인사 거명 되기도
‘관치 인사’ 논란으로 지난 6월 중단됐던 공공기관장 인사가 지난 달부터 재개됐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모 절차는 있으나마나란 지적이 나올 정도다. 사전 내정설이 흘러나온 끝에 청와대·여권과 가까운 이들이 중용되는 패턴도 여전하다.

중앙SUNDAY는 최근 한 달 사이 임명된 기관장 20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8명(40%)이 새누리당 의원을 지냈거나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위와 캠프 등에서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표 참조>

경북고(3명), 경북 사대부고(2명) 등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 출신도 7명(35%)이나 됐다. 대통령 재가와 임명 절차가 남아 있는 김석기 전 청장도 경북 출신이다.

행정고시·기술고시 등 관료 출신도 7명(35%)에 이른다. 공공기관·금융기관장 수장을 관료가 독점한다는 지적이 나온 후 청와대가 기관장 후보를 6배수로 늘렸는데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기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불공정한 공모 절차와 ‘보이지 않는 손’이 논란이다.

한국거래소 노조는 지난달 25일부터 ‘짜고 치는 이사장 선임, 즉각 재공모하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천막농성을 벌였다. 유흥렬 노조위원장은 “금융위 정찬우 부위원장이 최경수 이사장에게 내정 사실을 9월 9일 통보했다고 들었다”며 “9월 13일에 있을 후보 면접이 이뤄지기도 전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서 (친박 출신) 김영선 전 의원도 내정설이 돌아 선임 절차가 한동안 중단됐었는데 이번엔 아예 내정 통보였다. 최씨는 이전 근무지(현대증권)에서도 평가가 안 좋았다. 그는 박근혜 캠프에 참여했던 데다 TK 출신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이한구 의원, 정찬우 부위원장 세 사람이 밀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지원 의사 있던 이들도 원서 못내
서근우(사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도 8월 말부터 내정설이 돌았다. 문준식 노조 부위원장은 “공모 공고가 나가기 전부터 내정설이 나온 바람에 지원 의사가 있던 이들이 부담을 느껴 원서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서 이사장과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 이건호 국민은행장 등 금융연구원 출신들이 최근 요직에 발탁된 것을 놓고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연구원 인사들이 청와대에 끈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선 “서 이사장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찬우 부위원장은 최경환 원내대표 등과 각각 가깝다”는 말이 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선대위에서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았던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내정 전부터 ‘취임에 따른 타임 스케줄’ 문건에 이름이 등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문건 유출 과정을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데 대해선 “청와대 인사위원회 눈치만 보기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인희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임원추천위는 정권이 원하는 대로 도장 찍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공기관들이 다 윗선에서 신호가 내려오기만 기다리면서 오히려 운영 독립성을 스스로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청와대 인사위원회엔 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과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박준우 정무수석, 홍경식 민정수석과 함께 사안에 따라 관련 수석이 참여한다. 실무를 맡은 김동극 인사위 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도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이들과 가까운 여권 인사들도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임명된 이들을 놓고 자격 논란도 나온다. 손범규 전 의원은 장관급인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에 지난 7월 취임했으나 경험(사시 38회)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최진녕 대한변협 대변인은 “경력이 길지 않고 정치권 인사란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공단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2008년 출범)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이가 오면 조직이 커질 거란 기대도 있지만, 외압 때문에 임기를 못 채우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이곳 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시 동기(17회)인 서상홍 변호사, 이명박정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정동기(사시 18회) 변호사와 인수위 전문위원 출신 김필규(사시 25회) 변호사 등이 맡아 정부가 바뀔 때마다 논란이 이어져왔다.

경험부족·자격 논란도
박보환(사진) 전 의원도 관련 경력이 거의 없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공모에서 산림·공원관리 분야 전문가 등 25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자리에 올랐다. 유경호 노조위원장은 “이전에도 어청수 전 경찰청장 등 정치권과 인연이 있는 이들이 이사장으로 왔는데 이들은 자신의 조직을 만드는 데 공단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영아 전 의원이 원장이 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도 과기부 차관 출신 등이 수장을 맡던 곳으로, 정치인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 관계자는 “사실 차관 출신 후보도 있었는데 아예 면접을 안 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놓고도 철도 민영화에 대한 입장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전국철도노조 관계자는 “전문적 소양이 전혀 없는 인사는 아니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민영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러 온 거라면 낙하산으로 규정하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남은 기관장 인사에서도 관료 출신과 친박 인사들이 중용될 거란 전망이 유력하다. 박 대통령은 본래 전문성을 중시해 관료를 선호하는 데다 최근 진영 보건복지부 전 장관 사임 사태 등으로 인해 국정철학 공유가 잘 되는 ‘원조 친박’도 중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측에 공공기관 인사에 당도 배려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나름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관장 자격요건 구체화 해야 ”
기관마다 하마평도 무성하다. 한국마사회장에는 경남 출신 친박 중진인 김학송 전 의원, 제주 출신이자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거론된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는 한때 낙점됐던 산업부 출신 이모씨가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희망해 없던 일이 된 후 친박 인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국적인 주유소 조직망이 있어 정치권에서도 인기가 많은 한국석유관리원도 노리는 정치권 인사가 많다고 한다.

한국전력기술 사장에는 17명이 도전장을 냈으나 변준연 전 한전 부사장, 박구원 포스코건설 고문, 박치선 전 한국전력기술 플랜트 본부장 등이 유력하다. 한국수자원공사는 4대 강 사업과 관련 있는 곳이라 정치권 인사보다 학계와 공사 내부 인사들이 많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논란이 계속되면서 기관장의 자격 요건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공공기관 임원선임제도의 발전방향’ 보고서를 낸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선 공공기관 임원에 대해 직무 능력에 근거한 자격 요건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임원 자격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선임 과정과 기준을 임원이 결정된 직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