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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황소, 매직 머신 타고 페라리 추월하다

중앙선데이 2013.10.06 01:16 343호 19면 지면보기
5일 전남 영암에서 열린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예선을 앞두고 레드불 레이싱팀의 마크 웨버가 차량 점검을 위해 피트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같은 팀의 제바스티안 페텔이 1분37초202로 1위를 차지했다. [영암 AP=뉴시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의 대세는 레드불이었다.

F1 왕좌에 오른 ‘레드불’은

5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레드불 레이싱팀은 올해로 4회째를 맞는 2013 F1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관심의 초점이 됐다. 이날 예선이 열린 경주장을 찾은 팬들 중 상당수가 레드불 로고가 박힌 모자와 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예선을 마친 후 서킷 위에서 열린 팬 사인회에서도 레드불 드라이버 제바스티안 페텔(26·독일)과 마크 웨버(37·호주)에게 팬들이 몰렸다. 레드불 팀 건물에는 다른 팀에 비해 2~3배 많은 팬이 방문했다.

페텔은 예선에서 5.615㎞의 서킷을 1분37초202에 돌아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예선 1위는 6일 열리는 결승 레이스에서 출발선 맨 앞자리에 선다. 지난 3년간 종합우승을 차지한 페텔은 올해도 압도적인 점수 차로 경쟁자들에 앞서고 있어 4연속 우승이 유력하다. 2005년 F1에 뛰어든 에너지 음료업체 레드불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전통의 명문 레이싱팀 페라리를 물리치고 정상의 위치에 올라섰다. 레드불은 머신(경주차)과 드라이버, 기업이 삼위일체를 이뤄 승승장구하고 있다.

공기역학 연구에 천문학적 예산 투입
레드불은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에너지 음료업체다. 오스트리아인 디트리히 마테쉬츠(69)가 태국 출장 중 그 나라의 에너지 음료 ‘크라팅 다엥(붉은 황소)’을 마신 후 시차로 인한 피로감을 극복하면서 만들어지게 됐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마테쉬츠는 1987년 서구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한 에너지 음료 레드불을 출시했다. 카페인 함유량이 많아 몇몇 국가에서 보건 당국의 승인을 못 받기도 했지만 레드불은 곧 유럽과 북미 시장에 널리 퍼지게 됐다. 한국에는 2011년부터 공식 출시됐다.

레드불은 음료의 효능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익스트림 스포츠에 눈을 돌렸다. 지난해에는 지상 39㎞ 성층권 상공에서 자유낙하하는 ‘우주점프 프로젝트’를 진행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밖에도 스케이트보드, 자전거 선수들은 물론 프로축구단(미국 뉴욕 레드불스)까지 후원하고 있다. 레드불은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 성공했다.

극한의 스피드에 도전하는 F1에 레드불이 도전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레드불 레이싱팀은 2005년 포드로부터 재규어 레이싱팀을 인수해 창단했다. 창단 초반 뚜렷한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던 레드불은 2010년부터 F1을 주름잡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3년 연속 컨스트럭터(팀) 부문과 드라이버 부문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레드불은 압도적인 성적으로 두 부문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다.

1929년 설립된 페라리는 80년 넘는 전통이 집약된 기술력을 앞세워 레이싱에 최적화된 차량을 만든다. F1이 창설된 1950년부터 줄곧 대회에 참가한 페라리는 2000년대 초반 정점을 찍었다. 기술감독 로스 브라운(59)과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44·독일·은퇴)가 환상 궁합을 자랑했다. 브라운의 앞선 기술력과 슈마허의 환상적인 드라이빙 실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슈마허는 페라리 시절이던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슈마허의 5년 연속 종합우승, 총 7회 종합우승 기록은 F1 역사상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페라리는 지금까지 컨스트럭터 부문 16회, 드라이버 부문 15회 우승을 자랑한다.

페라리의 아성을 깬 레드불에도 이들 못지않은 듀오가 있다. 바로 애드리안 뉴이(55)와 페텔이다. 최근 F1의 흐름은 공기역학(에어로다이내믹스·Aerodynamics)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뉴이가 바로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각 팀은 공기 저항을 줄이고 다운포스(차체를 지면으로 누르는 힘)를 유도해 기록을 단축시키기 위해 공기역학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DM레이싱 감독이자 코리아 그랑프리 주관방송사 MBC의 F1 해설위원을 맡고 있는 이영배씨는 “뉴이는 챔피언을 만들어내는 차체 디자이너다. 현재 레드불의 성공에는 뉴이의 역할이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레드불이 독보적으로 앞서나가자 이를 질투하는 시선까지 등장했다. 페텔이 지난달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2위와 30초 이상 현격한 격차를 벌이며 1위를 차지하자 레드불이 금지된 기술을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페텔은 3일 레드불 팀 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해 “우리는 금지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6일 결승 레이스 때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이 우승을 차지할 것”이라고 웃어넘기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머신의 성능을 끌어올렸는지 알아내는 것은 다른 팀들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드불 머신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페텔은 ‘제2의 슈마허’로 불린다. 2005년 테스트 드라이버로 F1에 입문한 페텔은 2007년 미국 그랑프리에 첫 출전해 8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만 21세 73일로 역대 최연소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했다. 전 세계 언론이 ‘포스트 슈마허’로 부르며 그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페텔은 “나는 ‘제2의 슈마허’가 아니라 ‘새로운 페텔’이 되기를 원한다”며 비교를 거부했다. ‘F1 황제’ 칭호는 이제 슈마허에서 페텔로 넘어가고 있다.

2009년 레드불로 팀을 옮긴 페텔은 최고의 머신이라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녔다. 마침내 2010년 처음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도 만 23세 134일로 역대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1년에는 19경기에 출장해 11차례 1위를 차지했다. 슈마허의 한 시즌 최다 1위 기록(13승)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경쟁자들을 압도하기엔 충분했다. 페텔은 2012년에도 여유롭게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F1은 기술과 자본의 집약체
올 시즌 뛰고 있는 22명의 드라이버 중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페라리의 페르난도 알론소(32·스페인)는 페텔의 벽에 막혀 2010년 페라리 이적 후 한 번도 종합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알론소는 르노 소속이던 2005년과 2006년 종합우승을 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F1은 100억원대의 머신들이 최고 시속 300㎞ 이상의 질주를 펼치는 지상 최대의 자동차 쇼다. 연간 관람객 400만 명, 연간 TV 시청자 수는 6억 명에 달한다. 해마다 전 세계를 돌며 19~20차례 대회(올해는 19경기)를 치른다. ‘그랑프리’라는 대회 명칭은 오직 F1만 사용할 수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코리아 그랑프리는 5.615㎞의 서킷 한 바퀴를 총 55바퀴(총 거리 308.825㎞) 달려 순위를 결정한다. 대회별로 상위 10명에게 차등 점수(1위부터 25-18-15-12-10-8-6-4-2-1 점)를 부여해 종합우승을 가리게 된다.

F1 머신은 정지상태에서 출발해 시속 100㎞까지 속도를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2.5초에 불과하다. 시속 200㎞까지는 5초 정도가 걸리며 이 상태에서 정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9초다. F1 차량의 배기량은 2.4L로 중형차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출력은 750마력으로 월등히 높다.

드라이버는 급가속과 급제동을 반복하면서 엄청난 체력적 부담에 시달린다. 시속 300㎞로 달릴 때 드라이버에게는 5G(지구 중력의 5배)의 압력이 가해진다. 일반인은 3.5G 이상이면 의식을 잃는다. 경기 중 운전석의 온도는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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