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원 수, 밀린 임금 부풀려 4억원 챙긴 버스회사 사장

중앙일보 2013.10.05 01:13 종합 8면 지면보기
시내버스회사 대표 여모(45)씨는 지난달 6일 서울남부지검에서 구속됐다. 돈을 받고 기사를 채용한 혐의 외에 직원 퇴직금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여씨는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적자보전 명목으로 매일 지원하는 운영비를 채권단이 압류하자 직원 명의를 도용해 직원 20여 명의 퇴직금 배당을 법원에 신청했다. 다른 빚보다 근로자 임금·퇴직금을 우선 갚아야 하는 임금채권우선변제권을 근거로 해서다.


파산 때 근로자 우선변제권 악용
정부가 주는 체당금 부당 수령도
작년 1억여원서 올해 11억으로

 이런 방식으로 총 4억5600여만원을 타냈다. 하지만 퇴직금 신청 직원 대부분은 재직 중인 상태였다. 입사기간이 짧아 퇴직금 수령 대상이 아닌 직원도 일부 있었다. 여씨는 수령금액도 5~6배씩 부풀렸다. 그의 범행은 직원 고발로 드러났다.



 직원 김모(43)씨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근로자 이름을 팔아 돈을 타내곤 대부분을 여씨가 가로챘다”고 말했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임금채권우선변제권(우선변제권)’ 제도가 사업주의 재산 빼돌리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우선변제권은 근로기준법과 퇴직급여보장법에 보장돼 있다. 사업이 망했을 경우 다른 빚보다 근로자 임금을 먼저 지불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여씨 사례에서 보듯 근로자 명의로 퇴직금을 타내 가로채는 수법이 많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들은 서류를 조작해 퇴직금·임금과 근로자 수를 뻥튀기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하는 ‘체당금’을 불법 수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사 도산 시 근로자의 생계 보호를 위해 임금·퇴직금 일부를 정부에서 먼저 지원하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일부 사업주는 허위로 폐업신고를 하고는 체불임금 명목으로 체당금을 타가기도 했다. 지난 4월 전북지방경찰청은 “회사가 도산했다”며 체당금 1억9000만원을 타낸 혐의로 사장 박모(43)씨를 구속하고 최모(43)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최대 130%까지 근로자 임금을 부풀리고 직원 수를 조작했다. 회사는 사업권을 명의 이전하는 수법으로 계속 운영됐다. 현장을 확인하러 나온 근로감독관은 직원들을 동원해 감쪽같이 속였다. 범행에는 공인노무사도 가담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체당금 지급액수는 약 2323억원이고 올해 8월까지는 약 1515억원이다. 부정수급액은 지난해 1억5868만원이었고 올해 8월까지 10억8780여만원에 이른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그동안 감시체계가 잘 작동되지 않아 드러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최근 수사기관의 단속강화로 부정수급 적발 액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부정수급 적발엔 한계가 있다. 우선변제권 배당과 체당금 지급은 사업주가 임금지급 능력이 없음을 고용노동부나 법원이 확인해 줘야 가능하다.



 전직 버스회사 직원 박모(57)씨는 “사장이 내용은 알려주지 않은 채 서명만 하면 돈을 준다고 했다”며 “회사가 망해 돈을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응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방지순(법학) 교수는 “도산 인정 요건을 강화하고 내부자 고발을 활성화해 근로자 보호라는 법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훈의 윤수황 노무사는 “부정수급에 연루된 노무사를 공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호·신진 기자



◆체당금(替當金) 제도=기업이 도산해 근로자가 받지 못한 임금·퇴직금 등 일부를 국가가 우선 지급하는 제도. 지급한 금액은 추후 사업주에게 청구한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임금채권보장법을 통해 도입됐다. 도산 직전 최종 3개월의 임금 및 휴업수당, 3년간의 퇴직금이 체당금에 해당된다. 월정상한액은 퇴직 당시 연령을 기준으로 255만~357만원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