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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이전 박사, 40대 연구성과, 50대 '프리 노벨상'이 필수 코스 …

중앙일보 2013.10.05 00:52 종합 14면 지면보기

7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노벨상이 발표된다. 과학 분야 노벨상으로 가는 길엔 ‘노벨상 스펙’이 존재한다. 30세 이전에 박사 학위를 하고, 40세에 노벨상급 연구를 완성하며, 50~55세에 ‘프리 노벨상(해외 주요 학술상)’을 받고, 55~60세에 노벨상을 받는 경로다. 이런 스펙의 한국인 과학자가 있을까? 노벨상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알아봤다.



고교생 2명과 대학생이 팀을 이뤄 교수들도 쉽지 않다는 화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SCI급)에 논문을 실었다. 사진 왼쪽부터 논문의 공동 저자인 충남 천안의 북일고 3학년 김동현(18)군과 김재완(18)군, 공주대 물리학과 4학년 조소연(21)씨와 이기원 물리학 공주대 교수.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노벨과학상 스펙
"고독한 천재보다 동료들과 소통이 중요"

“국내 학자가 10년 내에 노벨 과학상(물리·화학·생리의학상)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시 돌아온 노벨상 시즌을 맞아 ‘혹시 올해엔…’ 하며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지만 전승준(고려대 물리화학) 교수의 대답은 냉정했다. 향후 10년을 전망하는 그의 시각은 비관적이기까지 하다. 전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이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을 진단했다. 정부가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하고 유명 과학자 1인에게 10년간 100억원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해서 그 효력이 당장 노벨상 수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노벨상으로 가는 단계는 일종의 법칙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2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국으로 새롭게 추가된 곳은 이스라엘뿐이다. 노벨 평화상이나 노벨 문학상이 비교적 여러 나라에서 배출되는 것과 다르다. 노벨 과학상은 일종의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몇몇 서구 선진 국가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 결과 발표 뒤 수상까지 평균 15년



 노벨상으로 가는 길엔 ‘노벨상 스펙’이 존재한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한국인(해외 교민 포함)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배출 가능성을 낮게 전망하는 이유는 ‘노벨상 스펙’을 갖춘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고려대 화학과 조민행 교수는 “울프상·래스커상을 전에 받았거나 논문의 인용 빈도가 상위 0.1% 이내에 들거나 노벨재단이 주관하는 노벨 심포지엄에 초청받은 학자 중에서 수상자가 약 90% 배출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단적인 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처음 만든 야마나카 교수는 2009년 래스커상을 받았고 노벨 심포지엄 연사로도 참여했다.



 ‘미국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래스커상은 1946년부터 의학 분야의 연구에 공헌하거나 공중보건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졌다. 기초의학·임상의학·특별상 등 3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는데 기초의학 부문 수상자의 50%가량이 평균 5년 뒤 노벨 생리의학상(간혹 화학상)을 받았다. 2011년엔 70년대 말라리아 치료 약물인 아테미신을 개발한 중국 중의과학원 종신연구원 투유유가 중국 과학자 중 처음으로 래스커 임상의학상을 수상했다.



 울프상은 이스라엘의 울프재단이 농업·화학·수학·의학·물리학·예술 등 6개 분야에 수여하는 상으로 78년 첫 수상자를 배출했다. 울프상 수상자의 30%가 노벨상을 받았다. 이 상을 받은 이가 노벨상을 받기까지 평균 5년이 걸린다.



 세계 최대의 인용 데이터베이스(DB)인 ‘웹오브사이언스(Web of Science)’를 운영하는 톰슨·로이터사도 노벨상 수상자를 족집게처럼 잘 예측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톰슨·로이터사는 DB 분석을 통해 20년 이상 저술한 논문의 인용 빈도가 상위 0.1% 이내이면서 영향력이 큰 논문 수가 많고, 또 논문의 영향력 지속 시간이 긴 학자를 중심으로 해마다 예상자를 지목한다.



 전 교수는 “톰슨·로이터사가 예상한 과학자의 20∼30%는 그해가 아니더라도 노벨상을 받는다”며 “연구의 인용 정도와 동료 연구자들로부터 받는 평가가 노벨상 후보 추천은 물론 선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료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노벨상 수상을 돕는다. 요즘 대부분의 학자들은 연구실 내의 동료, 다른 연구소의 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 교수는 “현대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동료들과 소통”이라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민아 교수는 “노벨상은 연구 그룹의 대표자가 주로 받기 때문에 자신이 주도한 연구 분야에서 인재풀(pool)을 확보해 다수의 연구 결과가 계속 쌓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중엔 노벨 과학상의 ‘징검다리’로 통하는 울프상, 래스커상, 톰슨·로이터 인용상을 받은 이가 아직 없다. 노벨상급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 노벨상 수상까지 걸리는 기간은 노벨 물리학상의 경우 15.1년.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52.6세다.



 만약 한국인이 올해 노벨 과학상을 받으려면 이미 15년 전에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릴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 교수는 “30세 이전에 박사 학위를 마치고 독자적 연구를 시작해 40세쯤에 노벨상급 연구를 완성하며, 50~55세에 울프상 등 ‘프리 노벨상’을 받고, 55~60세에 노벨상을 받는 것이 노벨상의 순로(順路)”라고 소개했다.



다나카, 콜럼버스 달걀 같은 연구



 간혹 예외도 있다. 2010년 물리학상을 받은 러시아의 안드레 가임 박사는 그래핀 연구를 완성한 지 5년 만에 수상자가 됐다. 야마나카 교수도 2006년 발표한 연구 업적으로 6년 만인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가임과 야마나카 박사의 수상은 2000년대 이후 연구에서 노벨상 수상까지 시간이 가장 짧은 사례다. 2000년대 이후 노벨 과학상을 받은 사람 중 수상 전에 세계적인 명성과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던 인물로는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화학상)가 유일하다.



 노벨 과학상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희망을 찾아나가야 할까. 다나카 고이치는 벤치마킹 사례다.



 2002년 10월 9일 오후 6시. 일본 교토에 있는 정밀기계 업체인 시마즈제작소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당시 43세) 주임은 저녁 식사로 채소를 듬뿍 넣은 라면을 먹을 생각을 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 급하게 그를 찾았다. “15분쯤 있다가 외국에서 중요한 전화가 올 테니 회사에서 대기하고 있어 주세요.”



 오후 6시15분쯤 되자 정말로 국제전화가 걸려 왔다. 영어에 서툰 다나카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얼핏 ‘노벨’과 ‘컨그래출레이션(축하합니다)’이란 단어를 들은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본인이 노벨상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몇 분 뒤 회사 안의 전화가 일제히 울려대기 시작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다나카를 포함한 세 명을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나카는 세계 최초로 세포 속 단백질의 무게를 측정하는 데 성공해 신약 개발에 크게 공헌한 점을 인정받았다. 그가 실험에 성공한 것은 26세였던 85년 2월이었다.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의 도호쿠(東北)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시마즈제작소에 들어간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다나카는 실수로 섞어 버린 글리세린과 코발트 미세 분발을 버리기가 아까워 실험을 계속했다가 세기의 대발견을 했다. 박사 학위는 고사하고 석사 학위도 없었던 20대 청년이 17년 뒤 노벨상을 받게 되리라곤 당시로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다나카의 말이다. “노벨상을 받게 된 기술 개발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어째서 그걸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죠. 그야말로 행운이었습니다.”



 행운이라고 말하지만 거듭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실험 방법을 조금씩 바꿔 다시 도전하는 끈기와 성실이 없었다면 영예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언제쯤 과학 분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 초·중·고와 대학에 다니는 ‘과학 꿈나무’들이 10~20년 후 우리 미래의 희망이다.



 20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국제적 과학 학술지에 논문 게재가 잇따른다는 소식은 좋은 신호다.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에 해당하는 국제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는 것은 대학교수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의 다나카도 26세 때 실험실에서의 우연한 발견이 결국 노벨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브래그 25세 때 수상 역대 최연소



 노벨상은 30대 이하 젊은 연구자에게도 문을 열어 두고 있다. 노벨재단에 따르면 노벨상을 받을 당시 나이가 20~30대였던 수상자는 지난해까지 모두 49명이다. 이 중 물리학상이 24명으로 가장 많고 생리의학상(12명)·화학상(7명)·평화상(6명)의 순이었다. 통계로만 보면 물리학 분야에서 우수한 젊은 연구자들이 노벨상의 희망을 더 많이 가져볼 만하다는 얘기다.



 러시아 태생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2010년 36세의 나이로 물리학상을 받아 21세기 과학 분야 최연소 노벨상을 기록했다. 74년 러시아 중부 우랄산맥 인근 스베르들롭스크주의 니즈니타길에서 태어난 노보셀로프는 네덜란드 네이메헌대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영국 맨체스터대로 건너갔다. 그는 같은 러시아 태생이면서 박사 과정 지도교수였던 안드레 가임(수상 당시 51세) 맨체스터대 교수와 함께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그래핀(graphene)’에 관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았다. 당시 세계 최초로 그래핀의 물리적 특성을 규명한 김필립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도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거론됐으나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실수로 누락됐다는 주장이 나중에 제기되기도 했다.



노보셀로프를 포함해 최근 30년 동안엔 4명의 30대 과학자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았다. 84년 생리의학상의 게오르게스 쾰러(당시 38세)와 86년 물리학상의 게르트 비니히(당시 39세), 87년 물리학상의 게오르크 베드노르츠(당시 37세)다.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는 1915년 25세의 나이로 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로런스 브래그였다. 그는 아버지(윌리엄 헨리 브래그)와 함께 ‘X선에 의한 결정구조 해석에 관한 연구’로 부자 공동 수상이란 진기록을 세웠다.



 전 교수는 “노벨상을 받으려면 어려서부터 좋은 질문을 만드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며 “나무(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매몰되지 않고 숲(더 넓은 분야)에서 질문을 찾아 둘을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울산 의대 이종진씨 SCI급 논문 세 편



 공주대 물리학과 4학년 조소연(21)씨는 지난 7월 화학 분야의 SCI급 학술지인 ‘센서스 앤드 액추에이터스 B:케미컬(Sensors and Actuators B:Chemical)’에 연구논문(제1저자)을 실었다. 논문 제목은 ‘압력과 유기 가스의 동시 탐지를 위한 주름구조를 가진 자립형 다공성 실리콘 기반 광섬유 센서’.



 조씨는 이 논문을 위해 1년 동안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실험이 잘 풀리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끈기 있게 매달린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한국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씨를 도와 실험에 참여한 충남 천안의 북일고 3학년 김재완(18)·김동현(18) 학생도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고교생이 SCI급 학술지에 저자로 등재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을 지도한 공주대 이기원(물리학) 교수는 “아직 고교생이라 생소한 점도 많았을 텐데 설명을 해 주면 금세 알아듣고 성실하게 실험에 임했다”며 “이들이 낸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실험이 성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4학년 송우철(25)씨는 벌써 국제 학술지에 세 편의 논문을 실었다. SCI급 학술지인 ‘프로테인 익스프레션 앤드 퓨리피케이션(Protein Expression and Purification)’에 제1저자로 논문을 썼고, 역시 SCI급인 ‘랭뮤어(Langmuir)’에는 제2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확대과학논문인용색인(SCIE)급에 해당하는 ‘바이오머터리얼스 사이언스(Biomaterials Science)’에도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했다.



 송씨는 “첫 번째 논문 의 제2저자는 서울대 수의학과 박사 과정에 있는 분이었는데 처음 공동 연구를 시작할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 내가 학부생이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더라”고 전했다.



 울산대 의과대학 본과 4학년인 이종진(25)씨도 ‘미국영상의학회지(American Journal of Roentgenology)’에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것을 비롯해 모두 세 편의 SCI급 학술지에 저자(공저 포함)로 이름을 올렸다. 이씨는 “영상의학회지 논문은 식도암 수술로 식도나 위의 일부를 잘라 낸 뒤 좁아진 연결 부위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치료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이라며 “학생 신분으로 대한영상의학회 학술행사에 참석해 내로라하는 국내 영상의학 전문의들 앞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을 때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7년 국내 의대 중 처음으로 ‘의학연구실습과정’을 도입한 울산대에선 아직 의사고시에 합격하지 않은 의대생들이 SCI급 학술지에 29편의 논문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의학연구실습과정은 의학과 1·2학년 모든 학생에게 연구과제를 부여한 뒤 적어도 2년간 연구에 참여토록 하고, 3·4학년 학생들이 연구논문을 쓰는 경우엔 1000만원의 학생연구지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주정완·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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