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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 핵의 '낮전등화'

중앙일보 2013.10.05 00:49 종합 29면 지면보기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북한의 가정주부들이 쓰는 속어 중의 하나로 ‘낮전등’이라는 말이 있다. 전등은 환한 낮에는 쓸모가 없다는 의미로 흔히 집에서 노는 남편을 일컬을 때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국군의 날 치사를 통해 ‘북한 핵의 낮전등화’를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핵개발을 고집하면서, 점점 더 고도화시켜 나가고 있다”며 “북한 정권이 집착하는 핵과 미사일이 더 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은 국가안보와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해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수십 차례 강조해 왔다. 문제는 ‘북한 핵의 낮전등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이냐다.



물론 어느 누구도, 어느 국가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할 수 없는 사안이 북핵 문제일 것이다. 6자회담, 북·미 고위급회담, 남북 정상회담·장관급회담, 북핵 기지에 대한 정밀폭격 검토 등 수많은 수단을 20여 년 동안 동원했으나 별 무성과이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말처럼 북한 핵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한국으로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부의 대책이란 북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하면서 북한에 대해 설득과 압박을 병행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박 대통령이 “킬 체인(Kill-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을 조기에 확보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군사력 강화와 압박의 차원으로,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설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개성공단 사태 해결 모델’에 고무된 정부는 다음 차례로 인도적 문제 해결을 통한 북한과의 신뢰 증진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돌연 이산가족 상봉 합의를 깸으로써 제동이 걸렸다. 그래도 개성공단 사태 때와 같이 북한에 당당하게 대처하면 북한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고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돼도 그것은 과거에 했던 사업이 원상 복구되는 것뿐이다. 북핵 해결과는 아직 거리가 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뢰 조성 노력은 해야 하지만 꼭 신뢰를 쌓은 다음에 해결하겠다고 하면 5년 내내 아무것도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발언이 시사적이다. 천씨가 박근혜정부의 대북 기조와 비슷한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수석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북핵의 낮전등화’를 위해선 우선 북한의 핵 공갈에 단호히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억제전략’을 확보해야 함은 당연하다. 북한이 어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을 통해 반발했지만 개의할 필요 없다. 동시에 북한이 핵을 스스로 ‘낮전등’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난 3월 말 북한이 ‘경제·핵 무력 병진 노선’을 채택해 그럴 가능성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에 ‘우리가 설정한 원칙을 따라오지 않으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자세로는 북한의 핵무장 능력만 고양할 뿐이다. 북한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 한국 안보의 장래를 위해선 ‘비핵 평화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초반 ‘8·15 평화통일 구상’ ‘7·4 남북공동성명’ 등 과감한 대북 대화 이니셔티브를 추진했다. 북한 특공대의 청와대 기습 사건과 미·중 화해 등 주변 정세가 급격하게 돌아간 것이 주 배경이었다. 북한과의 신뢰가 돈독해 그런 정책을 추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의 향후 경제발전과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전략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 측근들의 회고다. ‘소극적 원칙’에서 ‘적극적 원칙’으로, ‘절대적 원칙’에서 ‘현실에 부합하는 원칙’으로의 전환도 검토할 만한 때가 왔다.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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