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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고전을 읽으며 묻다, 우린 지금 행복한가

중앙일보 2013.10.05 00:10 종합 24면 지면보기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의 『』단테, 신곡, 그리고 피렌체 시』(1465). [사진 사월의책]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지음

김동규 옮김, 사월의책

424쪽, 1만6000원




며칠 전 수업시간에 한 학생이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갓 스무 살, 앳된 새내기의 상기된 표정으로. “선생님, 점심은 드시고 오세요?” 그 엉뚱한 질문이 이상하게도 뭉클했고, 하루종일 보이지 않는 주머니난로처럼 지친 마음 곳곳을 따뜻하게 덥혀주었다.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던 대상이 오히려 나를 챙겨줄 때 느끼는 뜻밖의 고마움. 존재의 쓸모가 아니라 존재의 안부를 묻는 따스함이 학생과 나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한순간에 좁혀준 것이다. 세상의 풍파에 씻겨나가지 않은 해맑은 순수의 빛. 내가 한때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빛난다』를 읽으면 이렇게 우리들 저마다가 품고 있지만 미처 보살피지 못한 존재의 환한 빛을 한껏 쪼이게 된다. 이 책은 『오디세이아』 『신곡』 『모비딕』 등 불멸의 고전에 담긴 ‘그때의 빛’을 ‘오늘의 빛’으로 되살리는 지적 모험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모든 것을 개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믿는 현대인은 과연 신의 뜻에 따라 살던 옛사람들보다 행복한가.



『오디세이아』에서 헬레네는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살림까지 차렸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 아무런 거리낌없이 모두의 칭송을 받았다. 도덕의 관점이 아니라 ‘신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헬레네는 에로스의 화신이면서도 헤라의 축복을 받은 ‘최고로 행복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였다면 헬레네는 대중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때그때 자신에게 비춰오는 신들의 빛에 자기의 삶을 조율했던 것이다.



이 책을 따라 단테의 『신곡』을 다시 보니, 알고 보면 단테는 로맨스의 끝판왕이었던 것 같다. 그는 대담하게도 그리스도의 자리에 그의 연인 베아트리체를 앉힘으로써, 가없는 신의 사랑을 종교나 학문이 아닌 살아있는 여인에게서 이끌어낸다.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표정으로, 연인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는 이 ‘사로잡힘’ 속에서 단테는 허무주의에 빠진 인간의 구원을 꿈꾼 것 같다. 이 사로잡힘이 사라진 세계, 오히려 개인이라는 주체가 모든 것을 사로잡기 위해 애쓰는 세계가 바로 근대사회가 아닐까.



 이성의 빛으로 세상 모든 다른 빛들을 덮어버린 ‘합리성의 승리’ 이후 근대인은 ‘내 삶은 오직 나의 책임이다’라는 강박에 빠져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게 된 것은 아닌가. 나는 이런 의문도 품어본다. 칸트시대의 계몽이성이 세속적으로 변형된 형태가 바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집단최면이 아닐까. ‘꿈은 이루어진다’는 세계관이 환영하는 인재는 자기 꿈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돌진하는 자기계발형 인간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주술에 빠지면 꿈의 정당성을 성찰하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어떻게 때려부수지?’라는 고민에 빠져 ‘내 꿈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한다. 우리가 보살피지 못한 존재의 환한 빛은 우리의 ‘선택’이 때려 부순 바로 그 장애물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을 향한 예리한 비판에 있다. 오직 흰고래를 잡아 죽이겠다는 불타는 의지로 똘똘 뭉친 에이허브. “우주에서 개인이 점하는 위치에 대해 분명하고도 완벽한 답을 발견한다는 그의 집념”,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지를 알아내려는데 미쳐버린 그의 욕망”이야말로 에이허브의 심각한 결함이라는 것이다. 에이허브식 공격본능의 끝은 위대한 확신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이다. 세계의 의미를 나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자기중심성이야말로 인간해방이 아니라 인간의 굴레가 아닌가. “나를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이라도 공격하겠어.”라고 장담하는 에이허브의 오만이야말로 이성의 빛을 맹신하며 다른 존재의 모든 빛을 미신으로 치부해버리는 광기가 아닐까.



위대한 예술가들은 ‘내가 이 작품을 창조했노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단지 만물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하찮고 성가신 모든 존재에게서 신의 부름을 듣는,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놓는 것. 빛나는 무언가를 찾아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 바로 내 곁에서 빛나고 있는 존재의 빛을 알아보는 눈이야말로 기적이 시작되는 장소가 아닐까. 세계의 불확실성에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 것. ‘위험하지 않은 삶’이 아니라 ‘위험마저 삶의 빛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정여울 문학평론가



●정여울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문학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써오고 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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