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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목되는 케리의 북·미 불가침조약 발언

중앙일보 2013.10.05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용의를 표명했다. 케리 장관은 그제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2+2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결정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협상을 한다면 우리는 불가침조약에 서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발언이긴 하지만 미 외교수장의 입에서 평양과의 불가침조약 얘기가 먼저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진 대로 북핵 문제는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미국은 지금 시리아와 이란, 팔레스타인 등 중동 문제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확실한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기 전에는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며 공을 평양에 던져놓은 상태다. 불가침조약을 언급하면서도 케리는 “과거처럼 양보와 합의, 파기를 거듭하는 협상의 악순환에는 빠지지 않을 것”이란 말을 잊지 않았다. 케리의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될 경우 미국이 줄 수 있는 거부하기 힘든 당근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을 비핵화로 견인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지금 동북아 정세는 고차원 방정식이 무색할 정도로 복잡미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2+2 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방위비 증액에 공식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군사대국화 행보에 날개를 달아줬다. 평화헌법 재해석을 통해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게 되면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 탈바꿈하게 된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해서도 미국은 미·일안보조약의 적용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에 기반한 미·일 안보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셈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동북아 질서에 큰 파장을 몰고올 게 뻔하다. 미·일 대(對) 북·중의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할 경우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는 건 한국이다. 한·미동맹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우리로서는 동북아에 새로운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고도의 외교력을 요구하는 문제다.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면서 일본이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가 북한 핵과 미사일의 위협임을 평양은 직시해야 한다. 집단적 자위권 확보도 주로 한반도 유사시를 상정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가 풀리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북아 질서의 불안 요인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불가침조약 체결은 북한이 미국에 그토록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의 종식을 의미한다. 북한 체제가 존속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북한은 케리의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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