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우근 칼럼] 아우슈비츠의 그림자

중앙일보 2013.09.30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거기에 지옥이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홀로코스트의 현장,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생생한 지옥의 기억으로 가득했다. 그 지옥으로 들어가는 정문 앞에 이르자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Arbeit macht frei)’는 글귀가 나타났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패러디한 나치의 거짓말이다.



 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들 가운데 노동력이 부족한 여성과 어린이·노약자·장애인은 대부분 일주일 안에 학살당했다. 나치는 그들의 손에 비누까지 쥐여주면서 목욕실에 간다고 속여 지하 가스실로 끌고 갔다. 가스실에는 희생자들이 숨 막히는 고통 속에 손톱으로 벽면을 긁어대며 울부짖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스실 위를 뒤덮은 새파란 풀밭도 그 끔찍한 기억까지 덮을 수는 없었다.



 가스실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악명 높은 수용소장 루돌프 헤스의 관사가 있다. 유대인들이 독가스에 죽어가는 동안 헤스는 바로 곁의 관사에서 가족과 단란한 식사를 즐겼을 것이다. 종전 후 그는 가스실 옆 공터에 세워진 교수대에서 처형당했다. 고압전류가 흐르던 철조망, 희생자들의 시신을 불태운 소각장, 그들이 남긴 가방·신발·안경·의족…, 어느 것 하나 그때의 아픔을 간직하지 않은 것이 없다.



 ‘죽음의 천사’로 불렸던 수용소의 독일인 의사 요제프 멩겔레는 쌍둥이 유대인의 팔다리를 잘라 서로 바꿔 붙인 뒤 그 생태 반응을 살피는 기괴한 실험까지 자행했다고 한다. 희생자들의 시신 중 일부는 재활용품이 됐다. 머리털은 베개와 카펫으로, 금니는 금괴로, 뼛가루는 비료로 둔갑했다.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앞서 죽은 동족의 머리털로 만든 베개를 베고 쪽잠을 자야 했다.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잿더미 속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투철한 역사 의식을 드러내는 폴란드의 격언이다. 잃어버린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는 뜻이다. 어제의 아픔에서 오늘의 삶을 읽고 내일의 길을 찾는 지혜다. 1979년 유네스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차마 문화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그 포악한 반문화의 기억을 위해.



 폴란드도 우리처럼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13세기 이래 수백 년 동안 몽골·스웨덴·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로부터 잇따라 침략을 당했고, 20세기에는 소련과 독일의 군화에 짓밟혔다. 수도 바르샤바는 다섯 번 불길에 휩싸였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은 그때마다 격렬히 저항했고, 자기네의 격언처럼 잿더미 속에서 바르샤바를 다섯 번 재건했다.



 폴란드는 유난히 피아노와 관련이 깊은 나라다. 폴란드의 국보적 존재인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1831년 러시아군이 폴란드 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하자 ‘혁명 에튀드’를 작곡해 쓰라린 마음을 달랬다. 저명한 피아니스트로 폴란드공화국 초대 총리를 지낸 파데레프스키는 조국이 나치 군에 점령당하자 런던으로 건너가 폴란드 망명 의회를 이끌었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추앙받는 유대계 폴란드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은 나치에 협력한 지휘자 카라얀과의 협연을 죽을 때까지 거부했다. 피아노의 선율에 깃든 폴란드의 저항정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 일본도 지옥 같은 강제수용소를 여러 곳에 두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현 일본 부총리 아소 다로의 증조부가 세운 아소 탄광이다. 아소 다로는 “(개헌을 위해) 나치 수법을 배우면 어떤가”라고 지껄인 장본인이다. 아소 탄광에 끌려간 한국인 노동자들은 하루 17시간 이상을 중노동에 시달렸고, 그들 중 약 200명이 구타와 굶주림·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한국인의 증언이 아니다. 양심적인 일본 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의 저서에 기록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도 침략과 학살의 죄악을 참회하지 않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그늘, 아우슈비츠의 그림자는 7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껏 길게 드리워 있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4동 입구에서 폴란드어와 영어로 쓰인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警句)를 만나는 순간, 이 명언을 일본어로도 기록해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나치를 닮고 싶어 하는 일본 극우파의 일그러진 역사 의식을 아우슈비츠의 지옥과 함께 영구히 남길 수 있도록.



 아, 그러나 지금도 수십만 명이 갇혀 있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교화소들은 어찌할 것인가. 남도 아닌 동족에게 고문, 강제 낙태, 공개 처형을 일상적으로 저지른다는 오늘의 생지옥, 우리 곁 가까이 드리운 저 야만의 그림자는.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