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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제·안보부터 관계 정상화를"

중앙일보 2013.09.27 00:22 종합 10면 지면보기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왼쪽)와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26일 한·일 관계를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김형수 기자]


“일본의 과거사 사과는 한·일 화해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충분조건은 일본 사회 저변의 변화다. 독도는 해결이 어려운 이슈다. 위안부와 역사인식은 일본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할 장기과제다. 경제와 안보협력 같은 기능적 관계 정상화를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와카미야 아사히 전 주필
김영희 본지 대기자 대담



 “한번 실패한 정치인이 다시 총리가 된다는 것은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12월) 3개월 전까지 상상도 못했다. 일본 우경화를 비판하며 폭력적 시위를 벌인 중국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재선에 큰 책임이 있고 한국도 일부 책임이 있다. 우파가 점점 힘을 얻는 역효과를 피하려면 일본을 효과적으로 비판해야 한다.”(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와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 한국과 일본에서 ‘언론 지성’으로 손꼽히는 두 사람이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관계를 개선할 지혜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인간개발연구원(회장 장만기)이 26일 개최한 ‘아시아시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향한 한·일 관계의 미래’라는 대담에서다.



 김 대기자는 “한·일 관계가 사과→반발→사과→반발의 패턴을 반복해왔다”며 “양국 사회의 문화적 화해가 없으면 사과를 되풀이해도 진정한 발전이 없고 일본 정부의 사과는 우파의 역풍을 불러 오히려 양국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프랑스가 독일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의 다자 틀에 끌어들인 것처럼 한국은 경제적으로 상호의존된 거미줄망으로 일본을 묶고 동북아와 동아시아의 다자안보체제로 일본을 견제하자”고 해법을 제시했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독일 아데나워 총리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과 도덕적 권위가 양국의 역사적 화해(1958년)를 이끌었다는 김 대기자의 시각에 동의한다”면서도 “독·불 관계와 동아시아 환경이 똑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식민지 시기에)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이승만 대통령이 드골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 화해하자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53년 일본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을 싫어했고 당시 만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없어 화해를 위한 수교 교섭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같은 일본의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주도해 국가배상은 아니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었는데 한국은 그것도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한·일기본조약(65년)에서 최종 종료된 배상문제를 이제 와서 한국 법원이 자꾸 뒤집는 판결을 하다 보니 일본 사람들은 한국 정치와 법원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일본의 분위기를 전했다.



 두 사람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독일의 홀로코스트 비교 등을 놓고도 시각차를 보였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똑같다고 비판하면 일본인들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기자는 “난징(南京)대학살과 731부대 생체실험뿐 아니라 일본이 이름과 성을 바꾸도록 강요하고 우리말을 못 쓰게 한 것은 영혼에 대한 학살이었다”며 “양적으로는 홀로코스트가 월등히 컸을지 모르지만 질적으로 보면 일본의 식민 지배가 그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이 인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글= 장세정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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