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혁신기업’ 순위에 한국 기업이 단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11개, 중국은 5개, 대만은 1개 기업이 뽑혔다. 세계를 주름잡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100위 안에도 못 들었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창조와 혁신의 필요조건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혁신기업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작은 발상도 존중하는 문화다. 작은 아이디어를 수많은 다른 아이디어들과 연결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유연한 조직을 운영한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나이키를 들 수 있다. 나이키는 직원들의 무모하고 엉뚱한 아이디어까지 기꺼이 수용한다. 신발 밑창에 스프링을 달아보겠다는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한 나이키 샥스 운동화는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나이키의 최고 인기 제품이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최근 ‘뒤집어 생각하기’를 전 직원에게 주문하면서 역발상을 통한 혁신을 강조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쿡메디칼은 관리자와 구성원들 사이의 장벽을 없애고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오픈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고 있다.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의료기기 개발에 적극 활용한다. 쿡메디칼이 세계 최초로 내놓은 말초동맥 약물방출 스텐트도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개발되었다.
반면에 한국은 어릴 때부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정답’을 맞히기 위한 획일화된 교육을 실시한다. 유년시절 초등학교를 마치고 독일로 이민을 갔던 필자도 창조적 사고력을 강조하는 독일 교육시스템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스펙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전 한 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대졸 신규 채용과 스펙 연관성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 가까운 기업이 ‘도전정신·열정’을 가장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꼽은 반면, 취업 준비생들의 대다수가 스펙이 취업에 영향을 준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은 기업의 언행 불일치가 가장 큰 원인이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 너도나도 ‘창조와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이를 위한 변화에 소극적인 것이다.
이승재 쿡메디칼코리아 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