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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공공 도서관 살리기 프로젝트도 한창

중앙일보 2013.09.27 00:10 7면
새로 단장한 도스토옙스키 지역 도서관. 지금은 산뜻하게 보이지만 전엔 침침하고 책장은 낡았었다. 모스크바의 개혁 1호 도서관이다. [루슬란 수후신]


창문의 묵직한 블라인드와 답답한 커튼 사이로 불빛이 희미하게 비친다. 땅거미가 내릴 무렵 나이 지긋한 여성 사서가 지친 표정으로 책상 위 책들을 수레에 옮겨 담아 열람실로 가져간다. 나무 의자에 앉아 조는 할아버지와 색 바랜 종이에 요리법을 베껴 적는 백발의 할머니, 그리고 카펫 가장자리를 툭툭 차는 일곱 살쯤 되는 소년. 사서는 책을 다 꽂은 뒤 폐관을 알린다. 할아버지는 부스스 일어나고 할머니는 짐을 챙겨 훌쩍 떠난다. 소년은? 사서가 데리고 나간다. 아이는 손자였다. 지난 15일, 모스크바 북부행정구역에 있는 제150호 지역 도서관의 하루 중 여섯 시간을 살펴본 모습이다.

모스크바 시내 5곳 리모델링 추진 … 도스토옙스키 도서관 첫 '신장개업'



오늘날 러시아에서 도서관은 거미줄 쳐진 창고 신세다. 이용자는 거의 없다. 거의 모든 남녀가 직장을 다니는데 개관을 오전 11시~오후 5시에 하니 올 수가 없다. 이용하려면 등록증도 필요한데 모스크바 주민 중 그게 있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그래서 ‘먼지 쓴 도서관’이 모스크바에 480개나 있다.



도서관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과거 위상을 잃었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해외 여행의 기회도 없던 시절 도서관은 정보를 얻고 견문을 넓히며 세상과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철학과 정치를 논했다.



그런 영화를 되찾기 위해 지금 모스크바 도서관들은 변신을 진행 중이다. 우선 도스토옙스키 도서관, 가가린 광장의 5월 1일 노동절 도서관, ‘브라티슬랍스카야’ 지하철 역 부근의 제30호 도서관(9월 중에 곧 개관함), 아르구놉스카야 거리의 제47호 아동도서관, 레닌스키 프로스펙트의 ‘프로스펙트’ 도서관 등 5개가 대상이다. 프로젝트는 모스크바 도서센터 보리스 쿠프리야노프 부소장이 발의한 개혁안에서 시작됐다. 그는 유명한 출판업자이자 사회평론가이며, 서점 ‘팔란스터’의 사장이기도 하다.



최근 치스티 프루드에 위치한 도스토옙스키 도서관이 변신 1호가 됐고, 9월 19일 한 번 살짝 열려 현장을 가 봤다. 입구 로비의 모습이 친근하다. 키 작은 사서 책상이 있고, 옷과 모자를 걸 수 있는 사물함도 있다. 복도에는 자판기도 볼 수 있다. 도서관에 음식물을 반입하면 벌금과 함께 도서관 카드도 반납했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자판기는 혁명에 가까운 시도다. 복도 끝에는 정원으로 난 문이 있다. 여름에는 이 정원에 야외열람실을 만든다.



열람실도 더 넓어진 듯하다. 책장도 커지긴 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이게 다 가구를 잘 배치한 덕분이다. 바로 책을 읽고 싶은 이를 위해 의자 딸린 책상을 뒀다. 건축가들은 서로 친해지고 교제하라고 마주 앉게 배치했다. 넓은 창틀 밑에는 쿠션과 소파도 준비해 두었다. 북 카페 같은 분위기다. 아 참, 창문의 창살이 없어졌고 커튼의 먼지도 털어냈다. 아래층에는 희귀 서적들을 볼 수 있다. 대여 불가지만 전자책으로 볼 수 있다. 희귀 서적들은 대부분 19세기 말 도스토옙스키 작품과 1907년 도서관 개관 때부터 있었던 책들이다.



무인 도서대여 체계도 도입되고 열람 체계도 바뀌어 더 많은 신간을 전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도서관 이용을 신청하거나 보고할 필요도 없어졌다. 책을 찾고 도서관에서 바로 읽을 것이라면 기록을 남길 필요조차 없다.



쿠프리야노프 부소장은 “정보 세계에서는 길을 잃기가 쉬운데 현재 러시아에는 안내자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들은 진정한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회의론자들은 “도서관의 운명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전자책 시장이 커가며 종이 책의 비중은 꾸준히 줄고 휴대전화로 언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데 굳이 도서관에 갈까. 쿠프리야노프는 “출판업 구조가 변하고 있지만 도서가 양적으론 줄지 않는다. 40루블(약 1300원)에 다운받을 수 있으니 책을 안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 학술자료는 다르다. 전자책과 종이책의 딜레마는 해결이 가능하다. 학술 자료를 합법적으로 내려받을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한다면 많은 독자에게 적법한 독서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 타자는 레닌스키 대로 127번지에 있는 ‘프로스펙트’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복지형 도서관이 될 것이다. 주변에 병원 등의 의료기관이 많아 심심한 환자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량이나 오토바이로 책을 가져다주는 서비스도 계획한다.



엘레나 김, 얀 셴크만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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